신한투자증권이 상장지수펀드(ETF) 유동성공급자(LP) 운용 과정에서 1300억 원이 넘는 선물 매매 손실을 낸 가운데 지난 3년여간 증권사들의 ETF LP 운용 자산이 4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ETF 시장이 빠른 속도로 불어나며 유동성을 공급하는 LP 자산도 덩달아 늘었지만 그에 걸맞은 내부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규모 손실 사태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5일 금융감독원이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전체 ETF LP 운용 자산은 24조 4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0년 6조 2000억 원에서 3년 반 만에 4배가량 증가한 규모다. 같은 기간 ETF 순자산은 52조 원에서 153조 원으로 증가했다.
ETF LP 운용 규모가 가장 큰 A증권사는 2021년 7400억 원이던 운용 자산이 올해 6월 3조 7000억 원으로 5배 늘었다. B증권사는 같은 기간 3배(1조 1800억 원→3조 1300억 원), C증권사는 2배(1조 1800억 원→2조 3700억 원) 증가했다. 운용 자산 3위의 D증권사는 2021년 1400억 원에 불과하던 ETF LP 운용 자산이 올해 6월에는 3조 700억 원까지 급증했다. 2년여 만에 무려 22배 불어난 셈이다.
문제는 운용 자산이 크게 불어나자 유동성 공급이라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적극적 운용으로 수익 추구 활동에 집중하는 사례도 늘었다는 점이다. LP는 금융상품에 대한 매매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매도·매수 호가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시장 참가자를 말한다. 원칙적으로 중립 포지션을 유지해야 하지만 ETF 시장이 커지면서 LP들도 추가 수익을 위해 특정 포지션을 적극적으로 취하기 시작했다. 마치 심판이 경기에 뛰어들어 직접 공을 찬 것과 같은 행위다. 최근 발생한 신한투자증권 손실 사태도 LP 목적에서 벗어난 장내 선물 매매를 하다 손실이 발생한 사례다.
전문가들은 불어난 몸집에 걸맞은 뚜렷한 내부통제 기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증권사의 성과급 체계는 상방이 뚫려 있어 문제의 소지가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강 의원실에 따르면 고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행위를 제재할 수 있는 뚜렷한 관리 규정이 없는 증권사가 대다수로 조사됐다. 규정이 있는 곳이어도 기준은 증권사별로 제각각이었다. 손실 가능성을 통제할 기준에 구멍이 생긴 사이 ETF LP 거래 상위 증권사들의 담당 임원은 매년 10억~20억 원의 성과급을 받으며 ‘연봉킹’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신한투자증권 사례를 통해 LP 업무 과정에서도 대규모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만큼 시장 신뢰와 개별 회사의 건전성 문제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규제가 시장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황 연구위원은 “LP 운용 방식은 결국 증권사의 투자 전략으로 손실이 나도 결국 개별 회사가 모두 책임을 지는 구조”라며 “금융 당국에서 규제의 영역으로 포함할 것인지 아니면 개별 회사만의 방식을 존중할 것인지는 당장 판단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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