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 40분가량 달리자 오렌지카운티 어바인에 들어선 현대자동차 미국 디자인센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 1층 로비로 발을 옮기면 현대차가 미국 시장을 겨냥해 만든 픽업트럭 ‘싼타크루즈’와 대표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투싼을 오프로드 콘셉트로 개조한 ‘투싼 비스트’를 나란히 마주하게 된다. 콘셉트카부터 양산차에 이르기까지 주요 차량의 디자인을 완성하는 이곳 역할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완성차 업계에서 각 브랜드 철학을 녹여낸 차량 디자인은 극비사항에 해당한다. 실제 기자는 소지한 스마트폰을 디자인센터에 맡기고 보안서약서를 작성한 다음에야 건물 안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내부 곳곳에는 검은 천으로 덮은 차량 모형들도 눈에 띄었다.
2003년 세워진 미국 디자인센터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트렌드를 고려한 디자인 혁신과 경쟁력 제고를 끌어내는 핵심 기지로 꼽힌다. 매년 풀체인지 모델 기준으로 5개 차종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싼타크루즈 등 현지에서 선보인 다수 차량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현대차는 남양디자인센터를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인도·중국·일본에 디자인센터를 운영하며 각 시장에 최적화한 차량 디자인을 구현하고자 했다.
미국 디자인센터에는 50여 명의 최고 전문가들이 모여 활발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앞서 메르세데스벤츠와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혼다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서 실무 경력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디자인 기획과 스타일링 개발·모델 제작, 색상·소재 개발 등 디자인과 관련한 업무 전반을 수행하며 굵직한 성과를 달성했다.
이를테면 쏘나타의 최전성기를 이끈 YF 쏘나타는 미국 디자인센터 주도로 디자인됐다. YF 쏘나타의 초기 스케치 단계부터 풀 사이즈 모델 디자인 개발까지 모든 단계에서 남양디자인센터와 공조해 완성도를 높였다.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과 날카로운 헤드램프 등 파격적인 디자인은 미국 소비자에게 호평을 받으며 160만 6512대 판매를 기록할 수 있었다. 1세대 싼타페와 스프츠카 티뷰론의 디자인 기반이 된 HCD-4, HCD-1 콘셉트카 역시 미국 디자인센터의 작품이다.
미국 디자인센터는 전동화와 자율주행 등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 발맞춰 디자인적 도전과 혁신을 지속할 방침이다. 케빈 강 내장디자인 팀장은 “과거에는 운전대와 페달로 운전을 했는데 최근에는 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기능을 켜 놓으면 거의 손가락으로 속도나 앞 차와의 거리 조절, 차선 변경 등을 조작할 수 있다”며 “운전대에서 손가락을 뻗어 이런 기능을 조작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고 터치스크린 위치, 페달 미사용 시 발의 위치 등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차 전환도 가속화하고 있다. 단순히 사용 연료를 전기나 수소 등으로 전환하는 것을 넘어 재활용·천연 소재 등으로 차량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려는 것이다. 미국 디자인센터 1층에 있는 색상·소재·마감(CMF) 연구실 ‘코랩(CO LAB)’은 다양한 친환경 소재를 파악하고 실제 적용 방법을 모색하는 공간으로 꾸려졌다. 코랩 중앙에 길게 뻗은 테이블 위로는 텀블러와 운동화, 나무 판자, 천, 가죽 등 수많은 물품이 펼쳐져 있었다. 소재나 용도는 제각각이지만 이미 재활용을 했거나 향후 재활용할 수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에린 김 CMF 팀장은 “곳곳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친환경 소재를 확보하고 활용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며 “아직 친환경 소재 공급이 많지 않아서 소재로 활용하기에는 가격적으로는 불리하지만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분명히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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