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카(BRCA) 유전자 변이가 있어서 양쪽 유방과 난소, 나팔관까지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는데 너무 힘드네요.”
“스물 여덟 살에 호르몬 양성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어요. 항암치료를 4회 정도 진행하기로 했는데 난소조직을 동결해 둬야 할까요?”
화요일 오후 4시 대림성모병원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유방건강TV’에서 진행되는 라이브 방송에는 본인이나 가족의 유방암으로 인해 겪는 각양각색의 사연이 등장한다. 진료실이라는 딱딱한 공간을 벗어나 비대면으로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의 특성 덕분일까. 라이브 채팅창에는 진료실에서 미처 묻지 못했을 법한 각종 질문 세례가 쉼 없이 쏟아졌다. 유방암 진단 후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문제와 고민거리를 털어놓기도 한다.
◇ “유방암 극복, 아는 것이 힘” 유튜브 채널 열어 환자들과 적극 소통
“예방적 절제술을 받으셨군요. 유방과 난소를 모두 절제한 후 식은 땀, 관절통 같은 폐경기 증상이 나타나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우울감이 나타나기도 하고요. 시간이 지나면 점차 익숙해지실거에요. 수영, 아쿠아로빅 같은 운동을 하면 한결 도움이 되실 겁니다.”
흰 의사 가운 대신 캐주얼한 차림으로 등장한 김성원 대림성모병원 이사장(유방외과 전문의)은 채팅창에 쏟아지는 댓글을 하나하나 읽고 답해줬다. 김 이사장이 수십 년간 축적된 임상 경험과 의학적 최신 지견에 근거해 답변하면 수십 개의 핑크색 손바닥이 댓글창을 가득 채웠다. “너무 힘들어말고 함께 유방암을 이겨내자”는 뜻이 담긴 '유방건강TV' 구독자들의 암묵적인 신호다.
유전성 유방암 분야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김 이사장은 2015년 개원 이래 12년동안 몸 담았던 분당서울대병원을 떠나 유방암 특화병원인 대림성모병원으로 옮겼다. 부친이 45년간 운영해 온 가업을 잇기 위해서다. 2019년 7월에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유방암에 관한 강의 영상을 업로드해 왔다. 2년 여 전부터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유방암 환자들과 틈틈이 소통하고 있다. 외래 진료와 수술 일정으로 숨돌릴 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유튜브에 공을 들이는 이유를 물으니 ‘두려움과 불안감을 몰아내는 힘은 아는 것에서 나온다’는 답이 돌아왔다. 유방암 환자와 가족들이 두려움과 불안감을 몰아내고 치료 의욕을 다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해 주기로 마음 먹었다는 것이다. 암 치료는 상급종합병원에서 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은 욕심도 컸다고 한다.
◇ 40~50대 환자 유독 많은데…고령화 추세에 폐경 후 발병률도 증가세
유방암은 한국인 여성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이다. 국가암정보센터에 따르면 2021년 한해 동안 2만 8720명의 여성이 유방암 진단을 받으며 갑상선암(2만6532명)·대장암(1만3609명)·폐암(1만440명) 등을 제치고 여성암 발생률 1위에 올랐다. 한국유방암학회는 현 추세를 고려할 때 올 연말까지 3만 665명의 유방암 신규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중 여성 환자가 3만536명으로 전체 여성암의 21.8%를 차지한다. 유방암은 전 세계적으로 발생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발생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여성의 유방암 발생 패턴은 북미 등 서구 지역과는 사뭇 다르다. 중앙암등록본부의 자료를 토대로 2021년 연령대별 유방암 발병률을 살펴보면 40대가 8589명으로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많았다. 50대가 8447명으로 근소한 차이로 2위를 기록했고 60대 5978명, 70대 2611명, 30대 2096명 순이었다. 유방암 발생률이 40~50대 초반까지 증가하다가 이후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유방암 발병률도 증가하는 다른 나라들과 대조적이다. 이러한 통계 해석에 대해 김 이사장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말했다. 엄밀히 우리나라에 유독 젊은 유방암 환자가 많은 것은 아니며 50대 이상 여성이 유방암에 덜 걸린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50대 전후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 차이를 가른 요소는 무엇일까. 김 이사장은 서구화한 식생활과 비만을 꼽았다. 현재 50대 후반 여성들은 유방암 발병률 증가의 배경으로 지목되는 서구화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은 세대라 20~30대보다 유방암 발병률이 낮다는 의미다.
◇ 결혼·출산 연령 늦어지며 유방암 증가세 지속될 듯…최선의 예방법은 ‘조기발견’
그는 “유방암은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노출 기간, 즉 생리 횟수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결혼을 늦게 하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추세와 맞물려 한국 여성의 유방암 발병률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유방암 진단 환자의 연령(중간값)은 2000년 46.9세에서 2021년 53.4세로 높아졌다. 인구 고령화 추세에 따라 폐경 후 유방암 환자가 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행히 유방암은 정기검진을 통해 조기 발견이 가능하다. 무증상 단계에서 검진을 통해 발견한 초기 유방암은 5년 생존율이 96%에 달한다. 5년 동안 재발하지 않고 생존한 환자 비율을 뜻하는 5년 무병생존율도 92%였다. 조기에 발견하기만 하면 수술만으로 완치가 가능하고 생존율도 높다는 얘기다. 유방암은 자가검진, 의사에 의한 진찰, 엑스선·초음파 촬영 등 영상 검진의 3가지 방법으로 진단한다. 자가검진은 매월 생리가 끝나고 4~5일째 하는 것이 좋다. 다만 자가검진만으로 유방암을 조기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증상이 없더라도 35세 이후에는 2년마다 의사에 의한 임상 검진, 40세 이후에는 1~2년 간격으로 유방 X선 촬영을 받아야 한다. 김 이사장은 “유방암 가족력, BRCA 변이 보인자 등 유방암 고위험군은 만 18세부터 매달 자가검진이 필수다. 만 25세 이후부터는 6~12개월마다 의사의 진찰과 유방 MRI 검사, 만 30세부터는 매년 유방 X선 촬영을 시행하는 것이 권고된다”며 “유방암은 다른 암보다 생존율이 높은 편이지만 진행이 상당히 빠르다. 연령에 맞는 유방 검진법을 정확히 숙지하는 것이 유방암 예방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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