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또다시 1400원 선을 돌파하면서 시장에서는 1400원이 ‘뉴노멀’이 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기본적으로 약달러를 선호하지만 최대 20%의 보편관세와 대규모 감세는 물가와 금리 상승에 따른 강달러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상충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책의 우선순위 측면에서 관세가 앞설 가능성이 높고 이 경우 한국의 수출이 고꾸라지면서 원화 약세 현상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2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뒤 한 달 여 만에 50원 넘게 치솟으면서 1400원을 넘어섰다. 지난달 11일 금리 인하 당시 1349.5원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이후 상승을 지속해 1380원을 넘어서더니 6일 트럼프의 승리 소식에 심리적 마지노선인 1400원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인의 취임 초기인 내년 1분기까지는 환율이 1400원을 위협하는 일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도 미 대통령 선거 이전부터 트럼프 당선시 1400원에 대한 인식을 새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시의 1400원과 지금을 동일 선상에 두면 안 된다는 뜻이다. 사실상 1400원을 용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트럼프 취임 이후 (2025년) 1분기까지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위협하는 수준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하나금융연구소는 원·달러 환율이 올해 말 1420~1430원까지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주식과 채권시장에서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채권시장을 놓고 보면 미국과 한국의 금리 차이가 벌어지면서 환율 상승을 압박하고 있다. 9월 말과 비교해 전날 기준 3년 만기 국고채금리는 0.09%포인트 오른 연 2.9%, 10년물은 0.05%포인트 상승한 연 3.04%를 기록했다. 반면 미 국채 2년물은 0.61%포인트, 10년물은 0.52%포인트나 치솟아 각각 4.25%, 4.3%를 가리키고 있다. 한은은 “한국 경제 부진에 대한 우려로 안전자산인 채권 수요가 늘면서 금리는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면서 “미국은 경제가 튼튼한데다 트럼프 당선 이슈가 부각되면서 금리가 상방 압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당분간 이 같은 흐름이 지속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요 교역국에 대해 대규모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과 함께 국채 발행을 동반하는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시장 금리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지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이번에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기 임에도 당분간 강달러 요소는 지속될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원화 약세 기간에 수출과 성장률이 꺾일 때다. 원화 약세는 기본적으로 수출 증대 요인이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중국에 60%의 관세를 부과하면 한국의 수출은 급감할 수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관세전쟁 시나리오별로 세계 교역량이 0.36~3.6% 감소하고 한국의 수출은 적게는 142억 6000만 달러, 많게는 347억 4000만 달러 줄어든다고 추정했다. 경제성장률도 최대 1.1%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 이는 원화 약세 요인이 돼 재차 환율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 특히 원화 약세 속 수출과 성장이 둔화하면 한은이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못 내리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중장기적으로는 강달러 현상이 누그러질 수 있다는 예측이 제기된다. 트럼프는 2015년 미 공화당 대선 후보 시절 때부터 ‘달러 약세가 미국 수출에 좋다’는 신념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관세 협상이 끝나면 환율 문제가 다시 한번 부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환율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국가에는 더 많은 관세를 부과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오건영 신한지주 자산관리 자문단장은 “트럼프 1기 트럼프가 위안화와 엔화를 집어서 통화 절하로 수출에서 이득을 보고 있다고 말한 만큼 주요 무역국에 통화 절상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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