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 당국의 연 이틀 구두 개입에도 원·달러 환율이 안정을 되찾지 못하면서 시장에서는 달러화의 초강세가 당분간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전후로 환율이 다시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전망과 최악의 경우 1450원을 찍을 수 있다는 분석이 함께 나온다.
서울경제신문이 14일 환율 전문가 10명에게 트럼프 대통령 취임일(2025년 1월 20일)이 속한 내년 1분기 원·달러 환율 예상 구간을 물은 결과 절반인 5명이 1420원 이상을 꼽았다.
이날 주간 종가 기준 환율(1405.1원)보다 최소한 10% 이상 더 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4명은 환율이 1430원 이상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수준인 1400원 이상~1420원 미만은 1명, 1380원 미만은 4명이었다.
내년 1분기 환율 상단을 1425원까지 열어둔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위원은 “트럼프 1기 시절 중국에 관세가 25% 부과되면 위안화가 10% 절하됐다”면서 “트럼프 행정명령이 떨어지면 위안화에 동조돼 원화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서 향후 주요 리스크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현 달러 강세는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인상 정책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것인데 이런 흐름이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위원도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이번에는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레드스위프’가 벌어졌다”며 “연임이 불가능한 트럼프 입장에서는 대선 공약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아 최악의 경우 환율이 1500원까지 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외환 당국은 가파른 환율 상승을 예의 주시하면서도 대응 여력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4157억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이다. 지난해 말 기준 외화 자산 중 미 달러화의 비중은 70.9%다. 단순 계산으로 약 3000억 달러의 실탄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환율 1400원이 ‘뉴노멀(새로운 기준)’로 고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환율이 가파르게 오를 경우 외환 방파제가 취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은에 따르면 외환보유액은 최근 빠르게 줄고 있다. 일각에서는 2018년 6월(4003억 달러) 처음 4000억 달러를 넘어선 이후 6년 4개월 동안 유지하고 있는 4000억 달러대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도 현재의 달러 강세를 멈출 만한 호재가 없다고 지적했다. 최진호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내수·수출 모두 좋지 않은 데다, 특히 반도체를 담당하는 삼성전자에서 외국인 증시 이탈이 있다 보니 환율이 많이 오르고 있다”면서 “한국 경제가 앞으로 더 좋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베팅하는 투자자들이 많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의 10년물 금리 동조화가 깨지면서 환율이 떨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뿐 아니라 주요국들의 통화가치가 떨어지고 있어 당국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돼 있다”며 “당분간은 미세조정을 하면서 트럼프 취임 전까지 미국 시장만 바라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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