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앞으로 1년간 자사주 매입에 총 10조 원을 투입하는 파격적인 주가 부양책을 15일 발표했다. 특히 이 중 3조 원의 자사주는 3개월 내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 주가가 4만 원대까지 하락하는 등 최악의 상황에서 주주를 달래기 위한 단기 부양책을 꺼내 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날 공시는 장 마감 이후 나왔는데 앞서 삼성전자 주가는 저가 매수세 유입으로 엿새 만에 7.21% 오른 5만 3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전자는 이날 이사회를 열어 향후 1년간 총 10조 원의 자사주를 분할 매입하는 계획을 의결했다. 10조 원 중 3조 원의 자사주는 3개월 내 전량 소각하기로 한 점이 특징이다. 이달 18일부터 내년 2월 17일까지 장내 매수 방식으로 매입해 소각할 계획인 자사주는 보통주 5014만 4628주, 우선주 691만 2036주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나머지 7조 원어치의 자사주에 대해서는 향후 이사회 결의 시 주주가치 제고 관점에서 활용 방안과 시기 등에 대해 다각적으로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측은 이날 자사주 매입에 대해 주주가치 제고 차원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지면서 올해 주가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 대중 견제에 따른 수출 감소 등으로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 심리가 얼어붙자 특단의 대책을 꺼내 든 것이다. 총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은 규모 면에서 역대 두 번째다. 삼성전자는 앞서 2015년에 11조 3000억 원, 2017년에 9조 3000억 원 규모로 자사주를 매입했다. 당시에는 매입한 자사주를 모두 소각한 바 있다.
시장에서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저하, 반도체 업황 악화 등 악재에 주가가 급락하자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가 초대형 규모로 자사주 매입에 나서자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한국 증시가 맥을 못 추는 상황에서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서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에 앞장서 호응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간 삼성전자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전날만 해도 4만 9900원에 장을 마감했다. 이는 2020년 6월 15일 이후 4년 5개월 만의 최저가다. 시가총액은 298조 원으로 300조 원마저 무너졌다.
외국인들의 순매도 행렬도 13거래일 연속 이어지는 등 수급도 꼬인 상태였다.
무엇보다 AI 열풍이 반도체 시장을 휩쓸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HBM 시장에서의 부진 등 흐름에 제대로 편승하지 못하고 저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불씨가 됐다. 여기에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의 당선에 따라 중장기적으로도 전망이 어둡다는 인식 확산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그런 만큼 이번 파격적인 주주환원책이 주가 반등의 전환점이 될지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7.21% 급등했는데 이는 2021년 1월 8일(7.12%) 이후 최대 상승률이다. 장중에는 8.62%까지 치솟았다. 주가가 급락하자 외국인은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고 13거래일 만에 삼성전자를 대거 사들였다. 외국인은 지난달 30일부터 전날까지 12거래일 연속 순매도하면서 3조 1690억 원을 던졌는데 이날에는 1388억 원어치를 쓸어 담았다. 기관도 532억 원을 순매수하면서 삼성전자의 상승세에 힘을 보탰다.
관건은 결국 실적이다. 특히 20일 엔비디아 실적 발표에서 레거시 메모리 업황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와 엔비디아향 HBM 공급 확대 등이 이뤄져야 추세적 반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엔비디아의 실적 발표에서 AI 반도체 시장의 성장성을 확인할 수 있다면 반도체 업황·실적 우려 완화의 계기는 될 수 있다”며 “삼성전자가 HBM 공급 시작을 내비친 것에 대해 고객사인 엔비디아가 공급 다변화에 대한 코멘트를 해준다면 (삼성전자에) 천군만마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증권 업계의 한 임원은 “실적과 함께 삼성전자 자체적으로 내부 변화의 메시지에도 주목할 것”이라며 "단기적인 해법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전략과 비전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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