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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원리를 무시하는 선의의 폭력 [BOK 경제강좌]

김형식 한국은행 경제교육운영팀 교수





다이아몬드의 가격이 우리가 마시는 공기보다 왜 터무니없이 비싼 것일까?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공기 없이는 도저히 살 수가 없는데도 공기는 거의 공짜로 주어지는 반면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왜 그렇게 비싼 것일까? 너무나 케케묵은 질문 같지만 이 안에 경제학의 뿌리 깊은 교훈이 짙게 배어있다. 그것은 바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란 것이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는 250여 년 전에 이 시장가격의 결정 원리를 ‘보이지 않는 손’이란 이름으로 설파했었다. 공기는 사람에게 매우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수요에 비해 공급이 거의 무한대로 주어지다 보니 가격이 매우 낮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이에 반해 다이아몬드는 사람들의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균형가격이 매우 높은 수준에서 형성된다. 이 매우 단순하고 간단해 보이는 원리가 사실은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것이다.

사람들은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으로써 자신의 효용 또는 행복감을 더해간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떤 재화를 얼마나 어느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고 얻기 원하는지를 제3자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과거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중앙계획기구가 전인민의 수요를 파악하고 이에 맞추어 생산, 공급하려고 하였으나 그 결과는 항상 ‘불일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개개의 재화 또는 서비스의 양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데 실패했고 이에 맞춘 생산, 공급은 인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재화 및 서비스에 대한 사람들 개개인의 수요나 선호도를 정확하게 모두 파악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신의 영역에 속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를 가장 가깝게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 즉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는 것이다.

시장도 때때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정부는 이러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고자 다양한 대책을 수립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적인 부작용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대체할 만한 다른 어떤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수시로 이 평범한 교훈을 잊어버린다. 마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능가하여 사람들을 훨씬 더 행복하게 해 줄 것 같은 자신감에 도취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한 가격결정체계를 인위적으로 왜곡할 때 항상 그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게끔 한다.



과거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아파트의 공급은 제한되어 있는데 수요가 급증하면서 세입자들의 부담이 커지자 시정부가 아파트 임대료의 상한선을 책정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판단은 오류임이 드러났다. 임대업자들은 임대료가 상한선에 묶여 있으니 비가 새건, 파이프가 터지건 아파트 수리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동네가 슬럼화 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시장가격보다 싼 임대료를 지불할 수 있는 아파트에 들어오기 위해 세입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웃돈’을 집주인에게 건네야만 했다. 집주인들은 가족이나 친척, 잘 아는 주위사람들에게만 임대하려고 했고 정작 집이 필요한 사람은 아무리 돈을 주려고 해도 집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세입자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던 임대료 상한제 본래의 취지는 퇴색하고 보금자리를 찾는 데 실패한 세입자들은 결국 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었다. 시장경제의 골간인 가격결정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흔들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비슷한 예를 금융시장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서민들의 이자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07년부터 대부업법 시행령상 이자율 상한선을 66%에서 49%로 낮추었다. 그 후에도 이자율 상한선은 계속 낮아져 2021년에는 20% 수준까지 낮추었다. 얼핏 보기에는 서민들을 위한 ‘선의의 조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을 더욱 이자율이 높은 사채시장으로 내몬 가혹한 조치였다. 왜냐하면 20%로 낮아진 이자율 수준에서는 대부업자들이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에 대한 대출을 더욱 줄여버리기 때문이다. 서민들을 위한 '선의'의 정책이 오히려 서민들을 옥죄고 괴롭히는 ‘폭력’으로 둔갑한 것이다.

'가격'을 우습게 생각하는 '선의의 폭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7년도에 아파트 경비원의 급여를 일률적으로 인상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준 고령자가 대부분인 아파트 경비원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저렴한 급여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일반근로자 최저임금의 70% 수준까지 인상한 것이다. 아파트 경비원의 낮은 임금수준을 인상해주려는 선의의 조치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로 인한 관리비 인상 부담을 걱정한 주민들의 냉혹한 대응으로 나타났다. 2007년도에 전국 아파트 경비원의 10% 이상이 해고되었다. 2만 명에 가까운 인력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이와 함께 해고된 경비원은 자살하고 빈집털이가 기승을 부리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초래되었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경제는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 같아서 인위적인 작용에는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반응을 한다. 선의로 시장가격체계를 왜곡시킨 조치들이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얼마나 원하는지에 대한 완전한 정보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완벽하지 않고 때때로 실패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선책을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최근 좌우 진영을 가리지 않고 세계적으로 득세하고 있는 포퓰리즘은 이러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다수의 결정이 항상 좋은 결과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수요 공급에 따른 시장원리를 무시하는 인기영합주의가 때로는 다수의 횡포(Tyranny of majority)로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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