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불공정거래로 경영난을 겪는 중소기업 사례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과징금으로 피해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불공정거래 피해 중소기업 지원기금 도입을 위한 좌담회 참석자들은 피해 중기가 대기업과 소송전을 벌이다 도산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피해 중소기업 지원기금’을 신설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혁신성장본부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가해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더라도 중기가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민사소송을 다시 제기해야 한다”며 “소송이 장기화하면서 파산하는 기업들의 현실을 고려할 때 피해구제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양옥석 중기중앙회 상생협력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는 이황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과 전종원 법무법인 정률 변호사, 박미영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양 본부장 등 학계와 법조계, 업계, 그리고 국회의 최고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공정위는 불공정거래 기업에 2016년 이후 매년 평균 6314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납부된 과징금은 정부의 일반회계 수입으로 편성된다. 21대 국회에서는 과징금으로 기금을 신설해 피해 중기를 지원하자는 입법 움직임이 있었지만 공정위는 손해액을 국가가 배상하는 것은 이중 배상 금지 등 손해배상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기획재정부도 과징금으로 신설하는 기금은 안정적인 재원 조달이 불가능하다며 반대했다.
이 원장은 이런 정부의 논리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과징금 부과는 부당이익을 환수하는 성격이 짙다”며 “부당이득은 피해자로부터 얻은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게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가 회복해야 할 피해금액을 정부가 빼앗아가는 것은 오히려 정의에 반한다”며 “가해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미 국가에 과징금을 냈는데 피해자에게 또 배상해야 하는 이중 배상에 대해 저항할 우려도 크다”고 덧붙였다.
전 변호사도 징수한 과징금으로 피해업체에 직접 배상해도 법률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전 변호사는 “불공정거래로 발생한 과징금으로 만든 기금을 피해업체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기금을 가장 밀접한 목적 사업에 투입하는 것”이라며 “가해사가 배상할텐데 국가가 중복 배상하는 이중 배상 문제는 채권 양도나 구상권 청구 등의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안정적 재원 조달 우려와 관련해서는 “과징금 액수가 크면 재원 조달에 문제가 없을 것이고 반대로 과징금이 줄어들면 구제해줄 업체 또한 줄어 재원 부족은 문제가 안되게 된다”고 역설했다.
박 조사관은 과징금을 재원으로 피해자를 지원하는 국내외 사례가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응급의료기금과 식품진흥기금 등이 과징금으로 조성되고 있다”며 “다만 국내 다른 기금들은 과징금이 재원이기는 하지만 피해자를 직접 구제 대상으로 삼고 있지는 않는 만큼 적용을 위해서는 추가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의 경우 증권법 위반자로부터 징수한 만사제재금 등으로 페어 펀드(Fair Fund)를 조성해 피해 투자자에게 분배한다”고 언급했다.
기금의 용처와 관련해서는 점진적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양 본부장은 “기금을 직접적 손해배상 재원으로 사용하지 않고 우선 융자·법률 지원 등에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조사관도 “10년 넘게 이중 배상 문제 등의 허들에 막혀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입법 시간을 허비하기 보다는 일단 간접 지원 용도로 기금을 신설하고 이후 용처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방안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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