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진정될 것이라는 외국계 투자은행(IB) 투자전략가들의 전망이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당선 이후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있는 가운데 단기적으로는 환율이 1400원을 웃돌 수는 있지만 1450원까지 오르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미국의 관세 부과 영향으로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0%나 1%대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성기용 소시에테제네랄(SG) 아시아 투자전략가는 이달 13일(현지 시간) 홍콩 우리투자은행에서 공동취재단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원·달러 환율이 단기적으로 1400원 위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피해 보이지만 1420~1430원대에서 추가로 1450원대 이상으로 간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원화의 경우 상대적으로 약세 현상이 빠르게 진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성 투자전략가는 트럼프 1기와 2기를 맞이하는 시장의 경험과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1기 때는 트럼프가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며 “트럼프가 관세 정책 등 여러 가지를 언급했지만 실제 현실화할지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선반영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한 후 실제 관세는 2018년부터 올렸다”며 “1기 때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관세를 올리기 전까지는 달러화 약세가 진행되기도 했었는데, 관세를 올리면서 달러화가 강해지고 위안화 등 아시아 통화가 약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짚었다.
트럼프 2기를 맞는 지금은 이미 시장에 정책 방향 등이 선반영돼 있다는 게 성 투자전략가의 분석이다. 그는 “시장은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상당 폭의 관세 인상이 일어날 가능성을 먼저 반영해놓았다”며 “실제로 1~2차례 관세가 올랐을 때 포지션을 유지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접근법이 앞으로 3~4개월 동안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런 이유로 트럼프 2기에서는 시장 반응이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국보다는 중국이 이른바 ‘트럼프 트레이드’ 충격을 더 크게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는 “최근 환율을 보면 위안화가 원화보다 더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최근 1∼2년 사이에는 원화가 이상하리만큼 위안화 대비 더 약세를 보였는데 앞으로는 원화가 위안화보다 더 버틸 수 있는 환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연진 크레디아그리콜 이코노미스트 역시 시장에 ‘트럼프 리스크’가 상당히 반영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관세에 따른 영향은 많이 시장에 반영이 돼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굉장히 많이 지어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트럼프 1기 때보다는 영향이 작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환율의 경우 트럼프가 실제로 관세를 어떻게 부과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뉴스가 나오게 되면 시장이 조금 더 움직일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트럼프 당선으로 내년 한국과 중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모두 조정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성 투자전략가는 “트럼프 당선 효과를 반영하는 데 1~2주 정도 걸리겠지만 전반적으로 하향 조정하려는 분위기”라며 “중국의 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고, 한국 역시 하향 조정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SG는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1%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관세 영향이 반영될 경우 이보다 더 낮은 2.0% 혹은 1%대로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의 경우 관세 부과는 마이너스 요인이겠지만 중국 정부의 부양책이 더 나온다면 상쇄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며 “중국은 올해 5% 아래, 내년에도 4% 초중반대로 전망한다”고 했다.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증시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시장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성 투자전략가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자발적 의지도 필요하고 정책적으로 끌고 가는 힘도 필요한데 시장의 기대에 비해서는 아쉬운 상황”이라며 “현실적으로 눈에 띌 만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이코노미스트 역시 “기업을 더 압박해서 적극적으로 외국인 투자가들에 알리고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며 “공시 등을 실시간으로 영어로 해 외국인 투자가들의 장벽을 없애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