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 달 내놓을 알뜰폰 활성화 방안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가계 통신비 부담 완화를 위해 알뜰폰 시장을 키울 필요가 있지만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지는 도매대가(망을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하는 비용) 인하만으로는 시장 활성화에 한계가 있는 만큼 경쟁력 있는 업체를 중심으로 인수합병(M&A)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업계의 자생력을 높이는 방안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달 알뜰폰 활성화 방안 발표를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들어갔다. 방안에는 이통통신사 자회사들의 합산 점유율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음성과 데이터 등 항목별 종량제(RM) 요금 인하와 전체 회선(휴대폰·가입자기반단말장치·사물지능통신) 기준이 아닌 휴대폰 회선을 기준으로 점유율을 제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이외에도 최근 국회 차원에서 필요성이 제기된 대기업 계열 알뜰폰 사업자의 시장 점유율 제한이나 대기업이 독립된 알뜰폰 사업자를 인수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 대기업 계열 알뜰폰 자회사 숫자를 제한하는 내용 등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달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알뜰폰 업계와 국회에서 거론된) 다양한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이번에 내놓을 방안이 통신 3사 자회사 중심의 시장 구조를 개선해 알뜰폰 사업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알뜰폰 가입자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통신 3사 자회사 5곳의 비중이 50%를 육박한다는 점에서 2022년 10월 나온 알뜰폰 활성화 방안이 ‘반쪽 효과’를 내는데 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기정통부의 ‘유무선 통신서비스 가입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1282만 9247명(전체 회선 기준)이던 알뜰폰 가입자는 지난해 말 1585만 1473명으로 늘어나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약 19%를 차지한다. 올해 9월 기준으로 1746만 2322명까지 늘었다. 휴대폰 회선 기준으로도 2022년 말 727만 2400명에서 올 9월 947만 7392명으로 늘어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대기업 쏠림 현상은 심화했다.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통신 3사 자회사 5곳의 알뜰폰 시장 점유율은 47.2%에 달한다.
알뜰폰 업계는 이번 대책에 담겨야 할 시급한 과제로 도매대가 인하를 꼽는다. 정부는 8월부터 SK텔레콤 등 통신업계와 망 제공 대가 협상을 진행 중이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도매제공의무 사업자(SK텔레콤)의 1MB당 데이터 도매대가는 2020년 2.28원에서 2021년 1.61원, 2022년 1.29원으로 떨어진 뒤 지금까지 동일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음성 도매대가도 2020년 10.61원에서 2022년 6.85원으로 떨어진 뒤 동일한 수준을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말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도매제공 의무제도가 상설화됐지만 이번 인하폭이 중요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그간 정부가 도매대가 인하 협상을 주도해 왔지만 내년부터는 알뜰폰 사업자가 직접 통신 업계와 협상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이번 협상 결과가 바로미터가 될 것이란 판단이 깔려있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도매대가 인하 여부도 중요하지만 망을 빌려쓰는 알뜰폰 사업자가 통신사들과 협상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면서 “이같은 상황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지원 방안이 별도로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통·금융 대기업의 알뜰폰 자회사 점유율과 숫자를 제한하거나 도매대가 인하 같은 방식만으로는 시장 활성화와 가입자 확대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신 M&A 활성화를 통해 알뜰폰 업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구체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영세 알뜰폰 사업자를 살리기 위해 도매대가를 낮추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못한 대책”이라며 “경쟁력 있는 알뜰폰 사업자가 M&A를 통해 자체 설비를 보유한 ‘풀MVNO’가 되도록 해 장기적으로는 통신 3사의 경쟁자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료방송 합산규제’와 유사하게 알뜰폰 시장에 대기업 진입 자체를 막을 경우 시장 자율성과 경쟁력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도매대가 인하분이 고객 서비스 강화로 연결될 수 있도록 알뜰폰 사업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스팸이나 보이스피싱 등 각종 범죄에 알뜰폰이 악용되지 않도록 사업자와 정부가 함께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 8월까지 적발된 대포폰 8만 6000건 중 95%가 알뜰폰으로 개통된 휴대전화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이 폐지되면 알뜰폰 업체와 통신 3사 간 고객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며 “고령층 등 알뜰폰 주 고객을 위한 사용자 환경·경험을 개선하고 고객 응대 등 서비스 개선을 통해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