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이수페타시스 온라인 주식 토론방에는 “제이오를 인수하기 위해 유상증자에 나설 것”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시장에 유상증자설이 삽시간에 퍼지면서 이날 주가는 9.79% 급락했다. 이에 한국투자증권의 이수페타시스 담당 연구원은 회사 IR 담당 직원에게 문의했고 “유증설은 ‘사실무근’”이라는 내용의 리포트까지 냈다.
하지만 이달 4일 또 한 번 시장에 이수페타시스와 관련해 유상증자 풍문이 돌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이수페타시스는 즉각 해명 공시를 통해 “(유상증자를) 검토 중이나 확정된 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며칠 뒤인 8일 대규모 유상증자 공시가 발표됐다.
이수페타시스 소액주주들은 이런 정황과 주가 흐름을 거론하며 유상증자 공시 전후에 문제가 많다는 입장이다. 소액주주 신 모 씨는 “이수페타시스는 한국거래소가 밸류업 우수 기업을 선발한 ‘KRX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도 편입된 종목”이라며 “항간에 떠돌던 찌라시보다 증권사의 리포트와 관련 기사를 더 신뢰해 주식을 팔지 않고 기다렸지만 이게 믿음에 대한 보답이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소액주주들은 주주 행동 플랫폼 ‘액트’를 통해 임시 주총 개최를 위한 주주 제안 마지노선인 3% 의결권을 모으고 있다. 이날 기준 2.31%의 지분을 확보해 조만간 3%를 충족할 것으로 보인다. 소액주주 측은 3%의 지분이 확보되면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제안해 유증과 제이오 지분 인수 철회를 주장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와 경영진이 주주 소통에 소극적으로 나설 경우 행동주의 펀드와 손잡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보 유출과 이를 이용한 선행 매매를 법적으로 명확히 밝히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이수페타시스 경영진이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만 기업설명회(IR)를 진행하는 등 일반 주주들과 소통이 부족했던 점은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주화 법률사무소 정혜 변호사는 “자본시장법은 상장기업의 내부 정보가 공시되기 전 이를 주식 매매에 이용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2017년 대법원에서 유사한 사례가 유죄로 확정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이수페타시스의 피인수 기업인 제이오의 사업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하는 시각이 많다. 제이오는 2차전지 관련 기업으로 반도체 부품 생산을 주력으로 하는 이수페타시스와 무관하다는 게 주된 근거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시장은 현재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겪고 있으며 특히 제이오의 주요 고객사는 장기 공급계약이 취소되는 등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짚었다. 박상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2차전지 특수 소재인 탄소나노튜브(CNT)가 향후 반도체 펠리클(보호 박막)·항공 등 응용처가 확대될 잠재력이 가시화하는 시점은 2027년 이후”라며 “제이오의 올해 실적은 영업 손실을 겨우 면할 수준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박 연구원은 “유증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하면서 조달 자본이 5500억 원에서 4000억 원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며 “제이오 인수를 위한 3000억 원은 확정된 상수이기 때문에 이는 곧 MLB 시설 투자 금액 축소로 직결된다”고 분석했다.
이수페타시스는 이날 2만 2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유증 계획을 발표한 8일 종가인 3만 1750원에서 28.19% 하락한 수치지만 소액주주 측은 이보다 훨씬 전부터 기관들의 매도로 주가가 급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이수페타시스의 주가는 지난달 24일을 기점으로 47.71% 떨어진 상태다. 기관은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2일까지 하루를 제외하고 총 1528억 원어치를 팔아치우며 10거래일 연속 매도 우위를 보였다.
시장에서는 소액주주와 행동주의 펀드 간 연합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 행동주의 펀드, 소액주주 모두 단기 차익에 치중할 가능성이 커 경영진의 필요한 의사 결정을 제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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