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럽연합(EU) 등의 제재를 뚫고 세계시장을 질주하는 비야디(BYD)가 내년 초 한국에서 승용차를 출시하는 것은 단순한 시장 다변화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BYD를 필두로 지리자동차 산하의 지커, 전기차 스타트업 립모터 등이 한국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제품 경쟁력을 입증하려 한다는 분석이다.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없이 성장하고 있는 한국 시장에 초기 안착해 글로벌 경쟁력을 시험하는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관세장벽을 피하고자 해외 생산을 확대하는 만큼 BYD가 한국에 생산 시설을 마련하는 첨병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달 22일 선전시 본사에서 만난 인둥둥 BYD 아시아태평양사업부 홍보·브랜드담당 이사는 BYD가 한국 시장에 승용차를 출시하며 내세울 주요 포인트에 대해 묻자 잠깐의 고민도 없이 “기술력”이라고 강조했다. 국산차 대비 저렴한 가격을 앞세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BYD는 제품력을 통해 한국 소비자에게도 충분히 승부를 걸 수 있다고 자신하는 모습이다.
BYD는 국내는 물론 해외 다수 소비자에게 가격 경쟁력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해외시장에서만 10만 대 넘게 팔려 BYD의 한국 진출 첫 모델로 유력한 위안 플러스(영문명 아토3)는 중국 내 가격이 13만 1800~15만 9800위안(약 2552만~3094만 원)이다. 동급의 기아 EV3 국내 판매 가격(3995만~4850만 원)에 비해 30~40% 저렴하다. 이를 토대로 국내 시장에서도 가격 경쟁력이 가장 강력한 무기로 예상됐다. 그러나 BYD는 중국산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 저가 이미지가 먼저 부각될 경우 제품 경쟁력은 뒷전으로 밀린 채 ‘싸구려’로 인식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기술의 우수성을 내세우는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는 분석이다.
BYD는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를 앞세워 자신들의 강점을 어필했다. 1995년 배터리 회사로 시작한 BYD는 세계 최초로 개발한 ‘블레이드 배터리’와 이를 차량에 그대로 장착하는 ‘셀투보디(CTB)’ 기술로 전기차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높였다. 본사 전시관에서는 한국 배터리 업체의 주력 제품인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와 BYD가 개발한 블레이드 배터리를 얇은 바늘로 찌르는 실험이 반복적으로 시연됐다. NCM 배터리는 쉽게 폭발했지만 BYD의 블레이드 배터리는 불이 붙지도 않았다.
BYD 관계자는 “차량에 들어가는 반도체부터 대부분의 제품을 BYD가 직접 생산하는 것이 강점”이라며 자신들의 판매 수치를 강조했다. BYD는 2022년 186만 대, 2023년 302만 대를 판매했고 올해는 10월까지 325만 대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과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각각 100%, 최고 45.3%까지 관세를 올려 부과했지만 수출 물량 역시 같은 기간 5만 대, 24만 대, 33만 대로 급증하고 있다.
현대차·기아가 장악한 국내 시장에서 BYD와 지커, 립모터 등이 진출해 성공할 경우 글로벌 시장 경쟁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업체 의존도가 높은 한국 시장에 안착할 경우 이를 바탕으로 해외 수출에서 경쟁력을 어필하는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중국 업체들의 국내 생산 기지 확보 움직임이다. KG모빌리티(옛 쌍용차)는 BYD와 하이브리드 시스템 공동 개발 및 배터리 조립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차와 합작하고 있는 베이징자동차는 고양시에 4조 원을 투자해 연간 20만 대 규모의 전기차 공장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BYD도 충북에 전기차 공장을 설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한국 시장 공략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메이드 인 차이나’ 이미지를 탈피하고 관세장벽을 우회하기 위한 ‘더 큰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안방을 공략해오는 중국 업체들이 한국을 발판 삼아 해외에서 국내 업체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