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동래부에서 밤하늘에 붉은 빛 한 덩어리가 있었는데 별도 아니고 구름도 아닌 것이 머리와 발이 있어 용 모양 같았는데 얼마 후 사라졌다.”
‘조선왕조실록’ 숙종편에 나오는 기록이다. 숙종 27년(1701년) 음력 10월 18일 극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오로라가 조선시대 한반도에서 관측된 것이다. 그로부터 323년이 지난 올해 5월 12일 강원 화천군에서 다시 오로라가 관측됐다. 지난달에도 미국·영국·중국 등 중위도 지역에 이례적으로 오로라가 등장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강력한 태양 폭풍을 예고하는 ‘준비운동’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과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공동 의장을 맡은 ‘태양주기 예측 위원회’는 최근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도 태양 활동이 극심해지는 극대기 시점이라고 발표했다. 한국천문연구원도 “오로라가 많이 관측되는 이유 중 하나는 활발한 태양 활동”이라며 “내년은 평균 11년 주기인 극대기에 이를 것”이라고 전했다. 극대기에 빈번해지는 태양 폭풍 탓에 내년 여름 한반도에서 오로라를 볼 가능성이 더 높아진 셈이다.
물론 일기예보처럼 태양 폭풍을 예고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이달 초 발사한 태양 관측용 특수 망원경 ‘코로나그래프(코덱스)’가 국제 우주정거장에 설치되면서 한국이 주도적으로 우주 날씨를 관측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코덱스의 다른 이름인 코로나그래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코덱스는 코로나를 관측하는 망원경이다. 코로나는 플라스마로 이뤄진 태양의 가장 바깥 대기로 개기일식 때 관찰된 모습이 왕관처럼 보여서 같은 의미의 라틴어 ‘코로나’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코덱스는 밀도만 관측했던 기존 코로나그래프와 달리 코로나의 온도와 속도를 동시에 측정할 수 있다. 코로나의 온도와 속도 자료는 태양풍 가속을 비롯한 풀리지 않았던 코로나에 대한 의문점을 풀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태양에서 일어나는 폭발 현상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시점이나 영향 등을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 우주 날씨 예보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강현우 우주항공청 우주과학탐사 임무설계 프로그램장은 “코덱스 활용으로 태양풍의 속도를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 만큼 지구에 미치는 영향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주 날씨 예보에도 강원도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시기를 특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빈번해진 오로라의 실상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태양 폭풍에서 방출되는 X선을 비롯한 전자기파는 빛의 속도인 초속 30만 ㎞로 지구에 도달한다. 폭발이 일어나고 8분 30초가 지나면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대기 상층부의 전리층이 교란되면서 발생하는 오로라가 극지방이 아닌 강원도까지 내려왔다면 태양 활동이 심상치 않다는 증거가 된다. 같은 현상으로 미국의 일부 장거리 전화망이 마비(1972년 8월)되고 캐나다 퀘벡에서는 송전망 마비, 미국 뉴저지는 대규모 정전 사태(1989년 3월)가 발생했다. 2005년 12월에는 플레어에서 방출된 X선 때문에 GPS가 10분 동안 오작동을 일으켰다. 영국 에든버러대 제프리 바실 교수 연구팀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태양 폭풍이 미국을 강타하면 최대 2조 달러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에 뚜렷한 해결책은 없지만 정확한 관측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다음 달 24일에는 나사에서 발사한 파커 태양 탐사선의 태양 접근이 예정돼 있다. 신비한 현상으로 일반인의 버킷리스트에나 올랐던 오로라의 근본적인 원인을 밝힐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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