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극한 갈등에 공무원들의 보신주의가 겹치면서 국정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결의 정치도 문제지만 정부 내에서도 정책의 손발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임기 반환점을 돈 윤석열 정부가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손봐야 할 부분들을 알아본다.
대통령실은 27일 늦게 ‘미국 신행정부 통상·관세정책 관련 긴급 경제·안보 점검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와 캐나다 등에 관세 25%를 부과하고 중국에 10%를 추가 적용 시 한국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는 자리였다. 대통령실은 정책실 차원에서 산업통상자원부에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기획재정부에는 미국 정책에 따른 영향 및 대응 방안, 업계 소통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정부와의 역할 구분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재집권하면서 △금융·외환 △통상 △산업 등 3대 분야에 회의체를 가동해 미국의 새 정책 기조에 대응하기로 했다. 경제 컨트롤타워인 부총리가 본격적인 대응을 시작한 셈이다.
대통령실이 정부 정책을 교차 검증하고 보완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지금은 시장에 오해를 줄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한 해프닝이 대표적이다. 앞서 대통령실이 “추경 편성을 포함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히자 기재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내년 추경 예산 편성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반박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조차 지금은 추경을 얘기할 때가 아니라는 얘기가 나왔고 결국 대통령실이 한발 물러섰다. 전직 경제 부처 고위 관료는 28일 “추경은 국가 경제와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대통령실과 당정이 물밑에서 조율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대통령실이 추경 필요성을 언급하고 정부가 부인하는 모양새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옥상옥이나 기재부 ‘패싱’ 논란도 이번 정부 들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상속세 개편 과정에서도 잡음이 일었다. 대통령실발로 “상속세 최고세율을 30% 안팎으로 인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있었는데 이는 세제 당국인 기재부가 세법개정안을 내놓기 전이다. 기재부는 이후 상속세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는 쪽으로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장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올 초 부영그룹의 출산장려금 1억 원 지급을 둘러싼 세금 문제도 기재부는 소극적이었다가 대통령실의 의중에 입장을 180도 바꿨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과학기술수석 인터뷰에서 4개의 모듈로 구성된 소형모듈원전(SMR) 1기의 건설 계획이 4기로 전해지면서 주무 부처인 산업부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4기 건설이 아닌 1기로 정리됐지만 이 과정에서 빚어진 혼선이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경제정책을 두고 대통령실이 기재부와 경쟁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책 설계와 부처 간 조율 업무는 기재부로 단일화하고 대통령실은 막후 조정과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는 참모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정 기획 측면과 달리 거시경제 운용에서는 경제부총리가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맡는 게 맞다”며 “상법 개정 과정에서도 기재부나 법무부가 중심이 돼야 하고 경제부총리가 강력한 몇몇 기관장이나 장관들의 의견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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