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비밀을 담은 반(反)물질 연구가 학계에 본격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나온다. 일반 물질과 만나면 소멸하는 탓에 운반은커녕 상태 유지도 쉽지 않을 정도로 취급이 까다로운 반물질을 처음으로 제조시설 밖으로 반출해 외부 연구실에 제공하는 시도가 사상 처음으로 이뤄진다.
30일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따르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퓨마(PUMA)’와 ‘베이스스텝(BASE-STEP)’ 연구팀은 각각 내년 하반기 CERN에서 만들어진 반양성자를 트럭에 실어 다른 연구실로 옮길 계획이다. PUMA는 10억 개 이상의 반양성자를 CERN 내 1.5㎞ 떨어진 다른 실험실인 희귀동위원소연구시설(ISOLDE)로, BASE-STEP은 더 적은 1000개의 반양성자를 CERN 바깥 700㎞ 거리의 독일 뒤셀도르프대로 옮겨 독자 연구를 진행할 방침이다. 운반장치를 합쳐 각각 10톤, 1톤의 무게다.
반물질은 일반 물질과 질량 등 물리적 특성은 같지만 전하는 반대인 물질이다. 음(-) 전하를 갖는 전자의 반물질은 양(+) 전하의 양전자(반전자), 마찬가지로 원자핵을 이루는 양전하 입자인 양성자의 반물질은 음전하를 띠는 반양성자다. 양성자와 전자로 이뤄진 수소와 반대로 반양성자와 양전자로 이뤄진 반수소가 되는 식으로 반물질 원자도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20세기 초 물리학자 폴 디랙이 전자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통해 수학적으로 양전자의 존재를 암시한 후 1932년 칼 앤더슨이 실제로 양전자를 발견하며 반물질의 존재가 확인됐다. 폴 디랙은 이 공로로 193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반물질이 일반 물질과 만나면 에너지로 바뀌며 둘 모두 사라진다.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에서 극소량으로도 치명적 위력을 가지는 신개념 폭탄 원료로 반물질이 등장하기도 했다. 물리학에서는 우주 탄생 초기에 물질과 반물질이 일대일의 비율로 동등하게 만들어져 둘 모두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물질이 더 많이 만들어서 소멸 후에도 일부 물질이 남아 지구와 태양을 포함한 현재의 천체들을 이루게 된 이유를 아직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규명을 위해서는 반물질에 대한 정밀 연구가 필수적이지만 물질과의 쌍소멸 반응 탓에 반물질을 취급하는 일이 쉽지 않다. 반물질을 만들어도 공기를 포함해 주변에 흔하게 널린 물질과 만나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이다. CERN은 쌍소멸의 역과정으로 입자를 금속 같은 다른 물질에 충돌시킬 때 발생하는 에너지의 일부가 다시 물질과 반물질로 바뀌는 원리를 응용해 반양성자를 만든다. 이를 182m 둘레의 도넛 모양 시설인 반양성자감속기에서 속도를 크게 낮춰 물질과의 반응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반양성자를 유지시킨다. 전 세계 여러 연구실에서 반물질을 만들 수 있지만 이를 저장하고 실질적인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기관은 CERN이 유일하다고 네이처는 설명했다.
반물질은 일반 물질로 이뤄진 운반 용기와도 접촉할 수 없기 때문에 CERN 반양성자감속기 시설의 반양성자를 외부로 반출한 사례도 그동안 없었다. PUMA와 BASE-STEP 두 연구팀은 초전도 자석을 활용해 반양성자를 접촉 없이 붙잡는 동시에 진공과 섭씨 영하 269도의 극저온 환경을 만들어 쌍소멸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일종의 특수 용기를 사용할 방침이다. 향후 우주의 물질-반물질 비대칭 문제는 물론 양성자들로 이뤄진 핵을 반양성자로 붕괴시켜 정밀한 핵 구조를 규명하는 등 다양한 연구가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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