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방위산업 규모가 전쟁 중인 러시아와 비슷하게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꾸준한 내수 시장 수요에 더해 K9 자주포, K2 전차, 천궁-Ⅱ 등 ‘스테디셀러’들이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된 유럽과 중동에서 큰 인기를 끈 결과다.
한국 기업 중에서는 한화그룹이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한화그룹은 2023년 전 세계 24위를 차지하며 전년(42위)에 비해 18계단 올랐다. 매출 증가율도 53%에 달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45위), LIG넥스원(76위), 현대로템(87위) 등이 뒤를 이었다.
한국 방산 기업들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는 배경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우리 군 납품과 더불어 해외에서도 대규모 수주가 이어진 효과다.
스웨덴 싱크탱크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보고서를 분석한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일 “한국은 방위 예산을 늘리며 방산 기업의 매출 성장세를 크게 끌어올렸다”며 “특히 기업의 수익을 크게 끌어올린 것은 전차나 대포 같은 육상 무기의 수출”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역시 국내 방산 기업들이 대규모 수주를 보였던 만큼 높은 성장세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2월 호주에 3조 2000억 원 규모의 레드백 129대를 공급하는 계약과 폴란드에 3조 4500억 원 규모의 K9 자주포를 판매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 올해 2월에는 폴란드에 천무 72대의 발사대와 사거리 80㎞ 유도탄(CGR-80)·290㎞ 유도탄(CTM-290)을 공급하는 약 2조 25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고 7월에는 루마니아에 1조 4000억 원 규모의 K9 자주포 54문과 K10 탄약운반차 36대를 판매하는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한화가 인수에 성공한 한화오션 역시 미국의 군수지원함·급유함 등 2척을 수주하며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본격화했다.
한화가 유럽에 집중한 한 해를 보냈다면 LIG넥스원은 중동에 한국형 패트리엇으로 불리는 ‘천궁-Ⅱ’를 잇달아 판매했다. LIG넥스원은 올 2월 사우디아라비아와 4조 2000억 원 규모, 9월 이라크와 3조 7000억 원 규모의 천궁-Ⅱ 수출 계약에 성공했다. 현대로템은 2022년 1차 계약으로 폴란드에 공급 중인 180대의 K2 전차에 이어 올해 내로 2차 수출 계약이 체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KAI 역시 지난해 폴란드와 말레이시아에 FA-50 전투기를 성공적으로 수출한 데 이어 추가 수출 기회를 엿보고 있다.
한편 방산 기업들의 해외 수출이 늘면서 영업이익도 개선되고 있다. 우리 군 납품의 경우 국방 예산의 제약과 정부의 가격통제로 인해 마진이 제한적이다. 반면 해외 수출은 계약이 상업적 성격을 가지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가격 책정이 가능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올해 약 1조 3000억 원의 영업이익이 기대되는데 2022년(4000억 원), 2003년(7000억 원)과 비교하면 매년 2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로템 역시 올해 4500억 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돼 지난해(2100억 원)보다 2배 이상 늘었다. LIG넥스원과 KAI도 각각 2300억 원, 29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지난해(각 1900억 원, 2500억 원)보다 추가로 수익성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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