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에 따라 제품을 구분하던 고정관념을 깨는 ‘젠더리스(genderless)’ 패션 트렌드가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반대 성별을 겨냥해 출시된 상품이나 중성적인 디자인에 매력을 느끼는 젊은 소비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 브랜드들은 이 같은 현상을 고객층을 넓힐 기회로 보고 젠더리스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3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LF(093050)가 운영하는 ‘히스(HIS) 헤지스’의 여성 고객 매출은 34% 증가했다. 히스는 2030세대를 공략하는 헤지스의 서브 브랜드다. 이름처럼(HIS) 본래 남성층이 주 고객이었지만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젠더리스 패션이 유행하며 여성 구매가 크게 늘었다. LF 헤지스 관계자는 “판매 1위인 ‘캐너비 발마칸 코트’의 제일 작은 사이즈(XS)를 오버핏으로 착용한다는 여성 고객들의 후기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용으로 인식됐던 상품이 최근 남성 소비자들에게 각광받는 반대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수입사인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에 따르면 부츠로 유명한 브랜드 ‘UGG(어그)’는 올해 1~11월 남성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38% 뛰었다. 여성 부츠 브랜드라는 인식이 깨진 데는 특유의 방수 기능성과 어떤 착장이든 무리 없이 어울린다는 점이 주효했다. 무신사에서도 올해 가을(9~11월) UGG 제품을 구매한 고객들 가운데 남성 비율이 38%까지 올라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1%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패션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이 남녀 옷을 규정하는 고정관념이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간 찾아보기 힘들었던 색상 등을 반대 성별 상품에서 발견하는 사례가 일반적이지만 아예 중성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젠더리스 트렌드의 대중화는 특정 성별의 수요를 넘어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브랜드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브랜드들은 이 같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시작부터 매 시즌 콘셉트를 여성 위주로 꾸렸던 브랜드가 매장에 남성 상품을 추가하거나 아예 신규 라인을 론칭하는 식이다. LF는 브랜드 본사 측과 협의를 거쳐 여성 패션 ‘이자벨마랑’ 점포를 남녀 복합 매장으로 재단장하고 있다. 현재 23개 매장 중 절반이 넘는 14곳이 전환을 마쳤다. 삼성물산(028260) 패션부문 여성복 ‘디 애퍼처’는 직전 봄여름(SS) 시즌에 이어 이번 가을겨울(FW) 시즌에도 남성 인플루언서와 협업해 젠더리스 상품을 출시했다.
백화점이 상품 소싱 조직의 성별 구분을 없애는 경우도 생겨났다. 현대백화점은 올해부터 남녀상품본부를 개편해 성별 구분 없이 트렌디·유스·클래시·액티브팀으로 운영 중이다. 남녀 의류를 구분하지 않고 한데 모아 판매하는 더현대서울 3층 ‘어바웃 패션’ 방식의 구성을 관련 조직 전반에 확산시킨다는 취지에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유통사 편의성에 맞춰진 상품 조직 구성을 브랜드와 고객에 친화적이도록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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