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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경제 어려운데…계엄 후폭풍에 경기 우려 증폭

국가신뢰 하락에 자금조달 난항

부진했던 투자 지표 '설상가상'

박근혜 탄핵때 경기 둔화 전례

"정치적 리스크 정리 서둘러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가뜩이나 얼어붙어 있던 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금리·물가 상승으로 소비·투자 모두에서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년에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1%대 후반 성장이 예측되는 가운데 고환율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이 겹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4일 기획재정부와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시장은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중장기적인 한국 경제 펀더멘털 위축으로 이어질지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가 단기간에 종료돼 경제지표에 끼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이후의 정치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가늠할 수 없어 거시경제 불확실성은 상당히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상현 iM증권 전문위원은 이날 발간한 보고서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례를 보더라도 국내 정치 불안은 상당 기간 원화 가치 약세와 경기 둔화 압력으로 이어졌다”며 “다행히 수시간 만에 계엄령이 해제됐지만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경기 하방 리스크 확대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이 1차적으로 유의하는 지표는 물가다. 비상계엄 선포 사태로 원화 가치가 급락(환율 상승)하면서 수입 물가가 급등할 우려가 커졌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11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1.5% 오르며 3개월 연속 1%대 상승률을 유지했지만 고환율 사태가 지속된다면 그간 진정되던 인플레이션에 다시 불을 지를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달러당 1400원 안팎으로 급등한 환율이 수입 물가에 서서히 반영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3일 “최근의 환율 상승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12월 이후 나타날 것”이라고 짚기도 했다.

가뜩이나 부진한 내수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단 소비가 문제다.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소매판매액지수는 1년 전보다 0.8% 줄어들며 전년 동월 대비 8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대학 교수는 “만약 경기가 좋은 가운데 계엄령 사태가 발생했다면 그나마 일시적인 충격으로 여기고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나 내수 부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계엄령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지갑이 더 닫힐 여지가 커졌다”고 해석했다.

투자 지표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건설투자와 설비투자 모두 시장금리와 밀접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비상계엄 선포 사태에 따른 정치 불확실성 확대를 금리 상승 재료로 보는 모습이다.







문제는 이번 계엄령 사태를 제쳐 놓더라도 건설투자와 설비투자 경기가 이미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건설기성은 전달보다 4% 줄며 6개월 연속 줄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도 건설투자가 올해보다 0.7% 감소해 2024년(-1.8%)에 이어 2년 연속 내림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설비투자 역시 반도체 경기 불확실성으로 둔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가 신인도 하락으로 기업들의 자금 조달 측면에서 부정적 효과가 예상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 전문위원은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유동성 위기설이 대두하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 하락은 자금 조달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짚었다. 허 교수는 “투자 부문은 트럼프 행정부 집권에 국내 정치 혼란까지 겹쳐 ‘불확실성 2단 콤보’를 맞게 됐다”고 평가했다.

국회 상황이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면서 정부 지출 정도를 예상하기는 더 어려워졌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확장 재정을 선호하는 야당의 성향상 국회에서 윤석열 정부에 비해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주도할 가능성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확장 재정 기조가 오히려 약달러와 금리 상승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러다 보니 기존에 각 경제 분석 기관이 내놓았던 예상치보다 내년도 경제성장률이 더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KDI와 국제통화기금(IMF)은 2025년 성장률이 올해(2.2%)보다 낮은 2%를 기록할 것이라고 봤고 한은은 내년도 국내총생산(GDP)이 1.9%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날 한국의 2025년 성장률 예상치를 종전의 2.2%에서 2.1%로 낮췄다. 그러나 이 같은 전망에는 트럼프 행정부 집권 리스크와 국내 정치 상황 불확실성은 명확히 반영돼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결국 국내 정치 상황이 빠르게 정리돼야 경기 위험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이번 사태가 거시경제에 끼치는 영향이 단기적일 것으로 본다”면서도 “만약 이 사태에 따른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한다면 환율·금리 상승을 부추겨 거시 지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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