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어 어안이 벙벙합니다.”
8년 만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가 추진되고 있는 지난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중앙부처 고위 관계자는 현재의 복잡한 심정을 이같이 드러냈다. 그는 야당이 장악한 국회와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에도 국정과제를 추진하기 위해 발 벗고 뛰어다녔지만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참담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야당의 감액 예산안 단독 처리로 정부의 내년도 주요 사업이 꽁꽁 묶여 있었지만 막판 정치권의 협상 타결을 기대했다”면서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럽다”고 토로했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대통령 탄핵이 급물살을 타면서 공직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각 부처 장관들이 “동요하지 말고 맡은 임무에 최선을 다 해 달라”고 내부 단속에 나섰지만 관가는 사실상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이날 정부서울청사 내외의 카페와 흡연구역 등에서는 삼삼오오 모인 공무원들이 ‘진짜 탄핵이 되느냐’ ‘오늘 나온 대통령 지지율은 어떤가’ 등을 언급하는 등 어수선한 반응이 이어졌다. 중앙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4일 밤부터 열린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를 언급하며 “시위 소리가 들리자마자 8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며 “2016년 당시 촛불집회 소리는 청와대에서도 생생하게 들렸는데, 지금 저들은 용산으로도 이동하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또 다른 과장급 공무원도 “각 부처에서 진행하던 주요 정책들도 사실상 ‘올스톱’ 됐다”며 “뉴스에 집중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2022년 대선 공약집을 살펴보는 공무원들도 나오고 있다”고 현재의 분위기를 전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요 경제부처들이 몰려 있는 정부세종청사 분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기재부의 한 과장은 “부총리께서 전날 확대간부회의를 통해 국민·기업과의 소통에 집중해달라고 말했지만 당장 업무와 관련된 기업이나 산하 기관을 만나도 ‘정부가 이런 식으로 정책을 펼칠 것’이라는 확신을 주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경제부처의 한 과장도 “아래 직원들에게 일단 우리의 할 일을 하자고 말해두기는 했지만 보고를 올리면 위에서도 ‘일단 기다려보자’고 하는 상황”이라며 “다음 주까지는 아무래도 업무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정부가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회의체들도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대외경제장관 간담회를 주재하며 차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원칙적으로 매주 대외경제장관 간담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회의는 2주째 ‘개점 휴업’ 상태다.
부총리(위원장) 및 13개 부처 장관, 한국은행 총재 등으로 구성돼 3일 열릴 예정이었던 국가통계위원회도 비상계엄 사태로 취소된 후 아직 일정을 잡지 못했다. 경제부처의 한 국장은 “장차관이 주재하는 내·외부 회의들은 실제로 개최될지 아직 확답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각 부서의 경우 공들인 사업이나 정책을 지금 내놓아봤자 국민들의 관심이나 신뢰·지지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다들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외국 정상이나 최고위급의 방문이 취소되면서 할 일이 없어진 경우도 있다. 외교·통상 관련 부처의 한 사무관은 “화요일 퇴근할 때까지만 해도 업무에 정신이 없었는데 비상계엄 사태 이후 상대국에서 방한 일정을 취소했다”며 “(국내 상황을 고려하면) 지금은 업무가 중요한 것 같지 않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어떤 방향이든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제부처의 한 관계자는 “주식이나 채권·외환 등 시장과 직접 맞닿아 있는 부처 공무원들의 경우 하루에도 수십 차례 한국의 상황을 묻는 연락이 빗발친다”며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게 정책 불확실성인 만큼 탄핵 정국이 빨리 수습돼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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