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선포 사태를 보면서 절망적이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그에 따른 후폭풍에 경영학계에서도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글로벌 복합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국내 정치까지 요동치면서 대한민국호(號)가 ‘시계 제로’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이런 때일수록 기업들이 중심을 잡고 정상적인 경영과 투자 활동을 최대한 이어나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군희 한국경영연구원장은 6일 서울 동국대에서 열린 한국경영연구원 창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기자와 만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집권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우리 대기업들이 관료화돼 자체적인 혁신 동력까지 잃어버리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정치가 어려운데 기업까지 무너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속에서도 기업이 경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조남신 한국경영연구원 이사장(한국외대 경영학부 교수)도 이날 행사 개회사에서 “강대국의 진영화, 안보와 국방, 관세와 반덤핑 문제, 글로벌 자원 경쟁 등은 기업들의 경영 활동을 상시적으로 위협하고 있다”며 “이틀 전에 일어난 사건도 우리 경제에 극심한 타격을 줬다”고 지적했다.
다른 경영학자들의 생각도 비슷하다. 김재구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급망 위기와 대외 리스크가 큰 상황”이라며 “그룹사들도 경영 불확실성에 대비해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추진하던 상황인데 지금과 같은 정치 혼란이 당분간 계속돼 국가 대외 신인도와 자본시장에 영향을 줄지 걱정된다”고 밝혔다.
한 경영학과 교수는 “이미 소상공인을 포함한 밑바닥 경기는 진짜 안 좋은 상황”이라며 “게다가 최근에는 롯데그룹에서 유동성 위기설까지 나올 정도로 대기업의 재무 상황을 두고도 우려가 나오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정부 각료들이라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행사에 참석한 한 기업인은 “몇몇 경제부처 장관이 총대를 메 경제 안정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학자들은 단기적인 정치 리스크부터 해소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김 교수는 “여야가 서로 합의점을 찾았던 기업 지원 법안이나 예산안 및 세법 개정안이라도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경영학과 교수는 “원래도 정권 운영이 위태로웠는데 이번 사태로 마침표를 찍은 꼴”이라며 정치 리스크를 대통령실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가 나아갈 방향을 더욱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 원장은 “최근 미국의 정부효율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상당히 기업가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도 실용주의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게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용준 성균관대 중국대학원장은 “한국의 노동 민주화가 기업 경영의 핵심 역량과 국제화에서 어떤 장단점을 줬는지도 경영학계에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들이 중심을 갖고 버텨줘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장을 지낸 정구현 연세대 명예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중국에서 가성비 높은 제품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한국 기업들에 최대 도전일 것”이라며 “오너 경영은 기본적으로 구조조정이 어렵다는 점, 그리고 탈조직화 경향이 강한 청년층을 경영 목표에 맞추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도 기업들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정 명예교수는 이어 “정치는 4류라고 하지만 우리나라가 이 정도 국가가 된 데는 기업들의 역할이 컸다”며 “지금 경제가 많이 흔들리는데도 버티는 것은 기업들이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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