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지난 6일(현지 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노벨박물관에 옥색빛이 감도는 찻잔을 전달했다. 손으로 쓴 메모와 함께였다.
메모에는 이 같이 적혀 있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는 동안 몇 개의 루틴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1.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가장 맑은 정신으로 전날까지 쓴 소설의 다음을 이어 쓰기
2. 당시 살던 집 근처의 천변을 하루 한번 이상 걷기
3. 보통 녹차 잎을 우리는 찻주전자에 홍차잎을 넣어 우린 다음 책상으로 돌아갈 때마다 한잔씩만 마시기
그렇게 하루에 예닐곱번, 이 작은 잔의 푸르스름한 안쪽을 들여다보는 일이 당시 내 생활의 중심이었다.
이 메모에서 2019년부터 이년에 달하는 시간 소설에 임하던 한강의 루틴을 상상해보게 된다. 아침 5시 반부터 전날 쓴 소설을 이어 쓰고 홍차를 찻주전자에 우린 뒤 한 잔을 마시는 쉼표를 찍은 뒤 다시 글을 쓰던 책상으로 돌아가던 풍경을. 그것도 하루에 무려 일곱 번씩이나 말이다. 한강에게 쉼을 준 동시에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갈 힘을 준 옥색 착잔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기증한 털신과 수의와 함께 노벨박물관에 보관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맞게 됐다.
이어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한강 작가는 옥색 찻잔을 기증한 이유를 밝혔다.
다음은 기자간담회 당시 한강 작가의 답변 전문이다.
◆ 노벨상 수상자의 기증행사에서 찻잔을 기증한 이유
= 찻잔은 저에게 굉장히 친밀한 사물이었다. 거창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저의 루틴, 저에게 아주 소중한 것을 기증하는 것이 좋겠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그런 게 좋아서. 단순하고 그런 것. 그냥 조용하게 한마디 건네는 느낌이 좋아서. 아주 조그만 찻잔이다. 그때는 카페인을 많이 마셨는데 이제는 카페인을 다 끊었다. 당시 하루에 몇 번씩 (집필을 위해) 책상으로 돌아가려 할 때마다 딱 그 잔만큼 홍차를 마셨다. 찻잔은 계속 저를 책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것이었다. 저의 글쓰기에 대한 아주 친밀한 부분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기증한 것이다. 올해 제가 작가로 활동한 지 꼭 31년 되는 겨울이다. 사실 메모에 쓴 것처럼 루틴을 지키면서 살았다면 아주 큰 거짓말이고 대부분은 방황하고, 무슨 소설을 쓸 지 고민하고, 소설이 잘 안 풀려서 덮어 놓고 그런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런데 그 찻잔을 사용할 때는 또 열심히 했다. 가장 열심히 했던 때의 저의 사물을 기증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에 대한 입장
=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랬을 텐데, 충격도 많이 받았고, 아직도 굉장히 많은 상황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뉴스를 보면서 지내고 있다. (비상계엄이 있던) 그날 밤 아마 모두들 그러셨을 텐데, 저도 충격을 받았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1979년 말부터 진행됐던 계엄 상황을 검토했는데, 2024년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2024년 겨울 상황이 다른 점은 모든 상황이 다 생중계돼 모든 사람이 다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저도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서 멈추려고 애를 쓰셨던 분들을 봤고,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모습도 봤고, 총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모습도 봤다. 마지막에 군인들이 물러갈 때 잘 가라고, 마치 아들에게 하듯이 소리치는 모습도 봤다.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젊은 경찰 분들, 젊은 군인 분들 태도도 인상 깊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뭔가 판단을 하려고 하고, 내적 충돌을 느끼면서 최대한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명령을 내린 사람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것이었겠지만 보편적인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생각하고 판단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던 적극적인 행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라건대 무력이나 어떤 강압으로 언로를 막는 그런 방식으로 통제를 하는 과거의 상황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전쟁 등 비극이 이어지는 현실에서 문학이 할 수 있는 역할
= 문학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고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어가는 그런 행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런 행위들을 반복하면서 내적인 힘이 생기게 된다. 어떤 갑작스러운 상황이 왔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최선을 다해서 어떤 결정을 하기 위해 애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이 된다. 우리에게 어떤 여분의 것이 아니고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계엄령 이후 국면에서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가능성
= 아직 정확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잘 몰라서, 앞으로의 상황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언어의 특성 자체가, 뭔가 강압적으로 그걸 눌러서 길을 막으려고 한다고 해서 잘 되지 않는 속성이, 언어에 있다고 생각이 된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다고 해도 계속 말해지는 진실이 있을 것이고, 그런 언어의 힘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에 대한 오해와 유해도서 분류에 대한 입장(유독 답변이 길었다)
채식주의자는 2019년 스페인에서 고등학생들이 주는 상을 받은 적이 있다. 고등학교 문학 교사들이 추천 도서 목록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읽히고 학생들이 토론을 해서 그 소설이 선정됐다. 당시 스페인에 가서 학생들의 토론과 시상식에 참여했는데, 학생들이 깊게 생각하고 분석하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굉장히 감명 깊었다. 한국의 중고등학교를 생각해봤을 때 문화 차이 등으로 인해 그렇게 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했다. 그래서 사실은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서 낭독회를 할 때, 학생들이 채식주의자를 가져와 '사인해 달라'고 하면 '소년이 온다'를 읽으라고 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요. (웃음) 채식주의자가 지금 받고 있는 오해들에 대해,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해명을 하고 싶다. 채식주의자는 질문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제목이 채식주의자인 것부터 아이러니하다. 채식주의자는 주인공을 지칭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을 한번도 채식주의자라고 명명한 적이 없다. 소설은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데 주인공은 철저히 대상화된 상태로 그려진다. 오해 받고, 혐오 받고, 욕망 되고, 동정 받는다. 완벽한 객체로 다뤄진다. 그래서 구조 자체가 책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는 문학적 장치를 통해 문장마다 아이러니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채식주의자를 고통스럽게 공감하면서 읽어주는 분도 있지만 오해도 많이 받고 있는데 그게 그냥 이 책의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 유해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를 하는 것은 이 책을 쓴 사람으로서 가슴 아픈 일인 게 사실이다. 좀더 들어가보면 지난 몇 년간 한국의 도서관에서 몇 천 권의 도서가 폐기되거나 연령 제한됐다. 저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의 권한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분들이 많이 고민한 뒤 책을 골라 비치하는데, 자꾸 이런 상황이 생기면 검열을 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우려된다. 책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존재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공존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워간다. 그러면서 성숙한 태도도 갖게 되고, 열려있는 공동체가 되는 것 같다. 인문학적 토양의 기초가 되는 게 도서관인데 사서 선생님들의 권한을 잘 지키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노벨상 수상의 의미 및 노벨상 시상식 등에 임하는 자세
=처음에는 저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한달 넘게 생각을 해보니 이 상은 문학에게 주는 것이고 문학에게 주는 상을 제가 이번에 받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니 지금은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다시 글을 쓸 준비가 됐다. (노벨상 시상식 및 부대 행사가 열리는) 노벨 주간에 너무 많은 일을 제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이 저에게 가장 어려운 날인 것 같다. 오늘 이후로는 노벨 주간을 더 즐길 것이다. 스톡홀름 방문 기간 동안 국립도서관, (스웨덴 작가인) 아스트리드 린드르겐 아파트 등을 방문할 예정이다. 지난 번 스톡홀름 방문 당시에는 둘러보지 못했다.
◆고향 광주에 대한 생각
=1970년 11월 광주에서 태어나 1980년 1월 서울로 올라왔으니 9년 2개월 정도를 광주에서 살고, 나머지 40여 년은 서울에서 살았다. 저는 광주 사람이기도 하고, 서울 사람이기도 하다. 한국 사람이기도 하고, 세계 시민이기도 하고 그런 것이다. 저의 정체성을 딱 규정하기는 어려운데 고향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광주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다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장소이자 이름이다. ‘소년이 온다’를 쓰는 과정에서 저는 많이 변했기 때문에 (광주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다시 한국에서 배출되기 위해 필요한 것
= 글을 쓴다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기에 '사회에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답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런데 문학을 참 잘 교육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부터 최소한 1년에 서너 권을 학교에서 읽고 그걸 토론하고 다각도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근육 같은 것을 기를 수 있고 문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문학은 장르별로 독법이 다르다. 에세이, 소설, 시, 희곡 등의 독법이 다르다. 그런 다른 방법들을 음미하며 읽으면서 다른 사람의 내면으로 들어가보고,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보는 경험을 어릴 때부터 (하기를 바란다). 특히 입시 때문에 멈추지 않고 중고등학교에서도 그런 교육을 한다면, 훨씬 독법이 풍요로워지고 좋을 것 같다. 모든 독자가 작가인 것은 아니지만 모든 작가는 독자라고, 열렬한 독자라고 하지 않나. 깊게 읽고 흥미롭게 읽고 읽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독자들이 많이 나오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세계가 전쟁 중인데 노벨문학상 수상을 마냥 축하할 수 없다'는 과거 발언
= 가족들이 너무 크게 잔치를 하겠다고 해서 (만류를 했던 것인데)... 축하를 하고 싶지 않다고 알려지는 오해가 있었다. 축하 자체를 안 한다고 알려져 사실 좀 당황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은 질문을 하게 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희망이 있나' 이런 생각을 할 때도 있다. 근데 요즘은 얼마 전부터, 몇 달 전부터, 아니면 그 전부터일지도 모르겠는데,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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