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사태로 외국계 증권사들도 연이어 ‘한국장 탈출’을 권하고 나섰습니다. 가뜩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으로 대외 리스크가 극심해진 상황에서, 정치적 불안도 부각됐다는 우려인데요. 특히 그동안 ‘홈 바이어스(자국 편향)’으로 국내 증시를 지켜오던 개인 투자자들도 6일에는 계엄 선포가 탄핵 정국으로 급물살타면서, 이례적으로 7563억 원을 팔아치웠습니다. 오늘 선데이 머니카페에서는 윤 대통령의 탄핵 국면이 국내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앞으로 투자 전략은 어떻게 세워야할지 짚어보겠습니다.
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홍콩계 글로벌 증권사 CLSA는 지난 4일 콘퍼런스콜에서 “내년 한국 비중을 줄이는 것뿐만 아니라 비중 축소 시기도 앞당겨야 한다”고 투자자들에게 권고했습니다. CLSA는 앞서 반도체 경기 둔화, 미국의 관세 정책 등에 따라 한국 시장에 대한 투자 비중 축소를 권고한 바 있습니다. 콘퍼런스콜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당초 점진적인 비중 축소를 권했다가 정치적 변수로 그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취지”라고 전했습니다.
실제 3일 밤 비상 계엄령 선포 직후 외국인은 4일 국내 증시에서 4080억 원, 5일 3164억 원, 6일 2843억 원을 팔아치웠습니다. 외국인은 지난달 25일부터 2일까지 6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렬을 이어오다가 3일 5645억 원 순매수 전환했던 터라, 계엄 선포는 더욱 아쉽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죠. 투자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선 만큼 당분간은 환차손을 피하기 위한 외국인의 매도가 지속될 것으로 점쳤습니다. 최제민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경제정책 불확실성이 환율 상승, 경기 둔화를 유발할 것”이라며 “경기 하방, 환율 상승 압력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외국인과 개인의 이탈로 우리 증시는 사흘째 하락했습니다. 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 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 등 역대 3대 지수가 역대 최고가 행렬을 보인 것이 무색한 움직임이죠. 미국은 글로벌 증시에서 연일 ‘독야청청’하고 있습니다. 경기 난관론에 힘입은 덕분이죠.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미국의 경제 상황에 대해 “놀라운 정도로 좋은 모습”이라고 평가하며 활황에 불 붙였습니다. 위험 선호 심리가 커지자 비트코인은 장중 10만 달러를 경신하기도 했습니다.
외신들은 국내 증시에 대해 잇따라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특히 윤 대통령의 탄핵 국면이 장기화된다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증시에 큰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라며 “시장에 좋지 않은 신호”라고 전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윤 대통령은 계엄령을 잠시 시행해 국회 교착 상태를 타개하려 한 시도가 실패한 후 정치적 생사의 놓고 싸우고 있다”며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타개하려고 한 밸류업 프로그램 역시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뉴욕타임스(NYT)는 “윤 대통령 탄핵 시도가 실패로 끝나면서 이번 주 짧은 계엄령 발효 이후 한국을 뒤흔든 정치적 격변과 불확실성이 길어지게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여당이 투표를 보이콧하면서 한국 대통령은 탄핵을 피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통령 탄핵 시도가 무산된 것은 한국을 뒤흔든 정치적 혼란을 연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일부 종목에 대해서는 과도한 하락을 저가 매수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주주 환원 정책을 이미 투자자들에게 공표했기 때문에 밸류업 동력은 지속될 것이라는 견해죠. 조지현 JP모건 연구원은 “(계엄 사태로)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에 필요한 입법 절차가 당분간 힘을 잃을 수도 있지만 개별 기업들은 주주 환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라며 “한국 금융주들의 단기적인 하락을 투자의 재진입 시점으로 판단한다”고 짚었다. JP모건은 신한지주, KB금융, 하나금융지주에 대해 주목할 것을 권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전반적 기류는 국내 대외 경제 여건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만큼 당분간은 반등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내고 “주식시장이 매력적인 수준으로 떨어졌지만 재평가를 위한 명확한 촉매제가 없는 한 (주가가) 낮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며 “탄핵 가능성으로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S&P는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와 신속한 해제는 신용등급 ‘AA’수준의 주권 국가로서는 매우 예상치 못한 일”이라고 했죠. 투자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을 둘러싼 탄핵 국면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야 증시도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탄핵 사태로 인한 정치 불확실성 자체가 주식시장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탄핵 가결 시 오히려 주식 시장은 정치 불확실성 완화로 해석하며 낙폭을 되돌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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