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이하 현지 시간) 기습 공격으로 공세를 시작한 시리아 반군이 열흘 만인 8일 수도 다마스쿠스 점령을 발표하며 승리를 선언했다. 철권통치를 해온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전쟁’의 나비효과가 시리아 내전에서 반군의 승리라는 예상 밖의 결과로 나타나며 중동 정세가 또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8일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슬람 수니파 무장 조직 하야트타흐리르알샴(HTS)이 이끄는 반군은 이날 수도 다마스쿠스에 진입했다며 “다마스쿠스가 해방됐다”고 선언했다. 2011년 ‘아랍의 봄’을 계기로 시리아 내전이 촉발된 지 13년 만에 알아사드 독재 정권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상황은 매우 급격하게 전개됐다. HTS가 주도하는 시리아 반군은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는 소규모 무장 조직과 함께 지난달 27일 기습 공격을 시작으로 파죽지세로 주요 도시를 점령해나갔다. 시리아 정부도 대응에 나섰지만 이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알아사드 대통령은 반군이 수도를 장악하기 전 도피했으며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모하메드 알잘랄리 시리아 총리는 알아사드 대통령의 현 위치는 모른다며 마지막 연락은 7일에 했다고 밝혔다.
‘정부군의 최후 보루’였던 다마스쿠스가 뚫리기 전까지 알아사드 대통령은 고립무원 상태였다. 정권을 지지해온 러시아와 이란이 각각 우크라이나 전쟁, 헤즈볼라가 벌이는 이스라엘과의 대리전에 발이 묶여 ‘남 도울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랜 우군인 이란은 ‘패배 확률이 높은’ 싸움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도 보여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란이 시리아에 파견했던 외교관들과 군 지휘관들을 철수시키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안팎의 상황이 유리하게 흘러가면서 HTS는 공세 수위를 더욱 높였고 중부 전략 도시 홈스 함락을 발표한 지 하루도 안 돼 알아사드의 마지막 방어선인 다마스쿠스를 점령했다.
혼란에 빠진 시리아 정국은 당분간 알잘랄리 총리가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HTS의 지도자 아부 무함마드 알졸라니는 이날 텔레그램을 통해 “다마스쿠스 시내 공공기관들은 공식적으로 이양이 이뤄질 때까지 전임 총리(알잘랄리)의 감독 아래 놓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평화로운 정권 이양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시리아 정부군은 이날 오전 성명을 통해 “하마·홈스 등의 교외에서 작전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테러리스트 조직과 계속 싸우겠다”며 전쟁의 불씨를 남겼다. 반군에서 벌써 알력 다툼도 감지되고 있다. 반군에는 HTS 외에도 민주주의 세력, 쿠르드족 민병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등 뿌리가 다른 여러 정파가 뒤섞여 있어 이해관계가 상충할 수밖에 없다.
주변국은 시리아 정세 변화에 대비하고 나섰다. 요르단 국영 통신 페트라는 “시리아의 안보·안정·통일이 중요하고, 이를 강화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했다.
이스라엘의 셈법은 보다 복잡해졌다. 당장 이란이 지원하는 알아사드 정권의 약화는 반가운 일이지만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돕는 튀르키예가 시리아에서 입지를 다지고 중동 내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은 걱정거리다.
한편 알아사드 대통령이 축출되면서 시리아의 53년 알아사드 가문 독재는 막을 내리게 됐다. 알아사드 대통령은 독재자였던 하피즈 알아사드 전 대통령(1971~2000년 재임)의 차남으로 부친 사망 이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자국민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해 ‘시리아의 학살자’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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