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국내 정치 혼란이 증시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단기에 그치거나 제한적이었다. 1979년 10·26사태 당시 국내 증시는 11월까지 큰 변동이 없다가 12월 이후 2차 석유 파동 영향으로 주가가 급락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에는 코스피 지수가 하락했다.
그러나 이는 중국 정부의 긴축 기조 영향이 컸다. 2004년 4월 중국 인민은행이 지준율을 7%에서 7.5%에서 올리자 당시 코스피 지수는 한 달간 23% 급락했다. 2016~17년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코스피 지수는 잠시 하락 후 올랐다. 탄핵소추안이 의회를 통과하고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주가는 오히려 더 상승했다.
국내 증시는 정치적인 사건보다는 대외 여건에 더 영향을 많이 받는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안 요인이 컸던 2004년(노무현 대통령)과 2016~17년(박근혜 대통령) 당시를 비교해 보면 큰 차이가 드러난다.
2004년 국내 증시에서는 화학·철강·운송 등 중국 수출 관련 업종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반면 소프트웨어, 필수 소비재, 유틸리티 등 방어적 업종은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박근혜 탄핵 당시에는 수출과 내수 여건이 모두 양호했다. 전자기기(IT), 반도체, 조선 등 수출주들과 증권, 은행 등 경기에 민감한 금융주들이 강했다. 반면 유틸리티 등 방어 업종은 약했다. 정치적으로 불안했던 국면은 유사하나 주식시장 방향과 내부적인 흐름은 전혀 달랐다.
경제적인 측면만 놓고 봤을 때 현재 국면은 노 대통령 탄핵 당시 상황과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는 수출도 개선됐고 내수도 투자 중심으로 양호했다. 반면 현재 국내 수출은 뚜렷한 둔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내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정책에 따른 불확실성을 감안하면 수출은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내수 부진도 여전하다. 민간 소비 증가율은 연 1%대에 그치고 있다. 지난 분기 설비 투자가 반등했지만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위험을 상쇄해 줄 만한 여건을 찾기 어렵다. 2004년 당시도 국내 내수는 2003년 ‘카드 대란' 사태 충격에서 벗어나 겨우 회복하고 있던 터라 소비 여건이 약했다.
수출 여건이 괜찮다면 정치적 불안에 따른 주가 하락은 기회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은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수출 업체들의 실적 부담을 줄일 순 있지만 회복을 기대할 수준은 아니다. 내수는 탄핵 논란이 완전히 잦아들기 전까지 부진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현실화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도 문제다. 박 대통령 탄핵 당시 학습 효과를 감안하면 현 여당이 쉽게 탄핵에 동참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비상 계엄 소동이 빨리 마무리됐고 직접적인 영향이 크지 않더라도 내수 회복은 지연될 것으로 전망한다. 내수가 나쁘지 않았던 2016년 12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 박근혜 탄핵 정국에서도 소비 심리 지수는 급격히 하락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호텔, 레저 등 경기에 민감한 내수주 접근은 어려울 듯 보인다.
현재 주식 시장은 현 정부의 정책 동력이 상실될 가능성도 반영하고 있다. 밸류업, 대왕고래, 원전 등 업종에 대한 심리는 위축됐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반대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투자 대안은 2004년 탄핵과 수출 둔화 국면에서 강했던 업종들이다. 당시 소프트웨어, 필수 소비재 등 업종 주가가 양호했다. 그 밖에 최근 금리 상승으로 모멘텀이 약해졌으나 경기 여건에 덜 민감한 제약 바이오 업종에 대한 관심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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