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원자재 시장이 들썩이면서 정부의 공공기관을 활용한 에너지 소비 절감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인공지능(AI)을 통한 에너지 다이어트까지 더해질 경우 장기적으로 석유 수입량을 91만 톤 넘게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정부는 에너지 공기업을 중심으로 에너지 공급자 효율 향상 의무화 제도(EERS·Energy Efficiency Resource Standard)를 통한 전력 소비 절감을 추진하고 있다.
EERS는 에너지 공급자가 정부가 부여한 판매 전력량의 일정 비율만큼 의무적으로 절감하는 제도를 뜻한다. 2018년에 한전이 처음 EERS을 시행했고 2019년 한국가스공사와 한국지역난방공사로 확대 시행됐다. 현재 공공기관 3곳에 EERS가 시행되고 있다.
이들은 전전년도 연간 에너지 판매량에 목표 비율을 곱한 연도별 에너지 절감 목표를 부여받는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이 제도를 통해 향후 5년 간 석유 수입을 91만 톤 줄일 수 있고 24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
실제로 EERS는 에너지 사용 절감을 통해 탄소 중립에 기여하고 에너지 설비 건설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환경오염 물질 배출 감소 같은 사회적 편익도 도모할 수 있다. 효과적인 수요 관리 및 효율화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이다. EERS는 해외에서도 다수의 국가가 시행 중이다. 미국과 영국·덴마크·프랑스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정부의 예산 지원이 줄어들고 있어 EERS가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부에 따르면 공급부문 예산은 5년간 매년 13%씩 급증한 반면 수요 효율화 예산은 매년 0.04% 오르면서 사실상 제자리걸음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EERS에 더해 AI를 적극 활용해 에너지 절약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에너지 감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7.1%로 미국과 일본 등 주변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제조업 특성상 에너지 감축을 위해서는 추가 설비투자 등이 필요한데 이 경우 대규모의 기업 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기업의 비용 부담 없이 에너지 절감을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AI 접목이 떠오르고 있다. AI로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고 수요 효율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전경영연구원은 “AI의 우월한 연산 능력으로 소규모 분산 전원의 통합 운영이 가능해져 전력 관리의 안정성과 경제성도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AI를 가전제품과 산업 설비, 건물 에너지 관리 시스템 등에 접목해 에너지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최적 운영 방식을 만들어 에너지 소비 절감을 하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AI를 접목한 에너지 소비 절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스마트 그리드는 AI의 도움으로 전력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이다. 전력망에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전기 공급과 수요를 조절해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가령 삼성전자는 6월 일상 속 에너지 절약에 도움을 주는 스마트싱스 에너지(SmartThings Energy) 서비스를 개편했다. AI를 통해 에너지 사용량을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선택 옵션에 따라 AI 절약 모드가 실행되어 사용 환경과 전기요금 체계, 사용량 예측 등을 제공해 에너지 절감 기능을 확대하고 있다.
또 AI를 활용한 스마트 홈 시스템을 통해서도 가정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 AI가 집에서 거주자의 생활 패턴을 학습해 조명과 냉난방·가전제품 등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거주자가 집을 비우면 온도를 낮추거나 가전제품을 자동으로 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게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AI 기술이 앞으로 더 발전하면 전력망 효율도 높이고 에너지 효율 향상의 일환인 EERS 정착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