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실손보험 개혁 드라이브가 당분간 표류할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윤석열 대통령이 보건복지부와 금융위원회에 “연내에 개선 방안을 도출하라”고 지시했지만 정국 혼란이 심화하면서 좌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게다가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사실상 해체되면서 개선안 도출의 동력도 크게 떨어졌다. 정부의 개혁안을 기대했던 보험 업계는 발만 동동 구르는 모습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보험 업계는 올해 안에 실손보험 개혁안 발표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대책 수립에 들어갔다.
실손보험 개혁은 ‘비급여 진료의 횟수와 범위, 가격 등에 대한 정부 통제’와 ‘실손 상품 구조 개선’이 동시에 이뤄져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동시에 개혁 방안을 마련하는 중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표 후 대한병원협회·대한중소병원협회·국립대학병원협회 등 병원 3단체가 5일부터 8일 사이 의개특위 참여 중단을 선언해 특위 운영이 멈춰버렸다. 의개특위는 당초 이달 19일 공청회를 열고 비급여와 실손보험 개선 방안 등을 포함한 의료 개혁 2차 실행 방안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이달 말 확정된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모든 계획이 물 건너간 상태다. 특히 계엄 포고령에 적힌 ‘현장 미복귀 의료인 처단’ 내용이 의료계를 격분하게 한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당분간 특위 재개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금융위는 이달 16일로 예정된 보험개혁회의 안건에 실손보험 개혁 방안을 올리기는 할 방침이다. 본인부담금을 올리고 비급여 이용 횟수와 보장 한도에 대해 논의할 방침이다. 금융위 계획대로 상품 구조 개선안을 연내 발표한다고 해도 정부의 비급여 관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실손보험 개혁은 반쪽짜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게 보험 업계의 지적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정부의 비급여 관리와 실손 상품 구조 개편을 동시에 접근해야만 근본적인 개선이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손 개혁이 금융 당국 업무의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현재 금융 당국은 금융시장 리스크 관리가 발등의 불이다. 보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실손보험 개혁안 연내 마련을 지시한 윤 대통령이 곧 탄핵되거나 사임할 수도 있는 상황인데 추진 동력이 얼마나 남아 있겠냐”며 “환율과 증시 상황을 보면 실손 개혁 서두르자고 말하기도 미안한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판매되는 4세대 실손보험은 올해 상반기 130.6%의 손해율을 기록했다. 이에 금융 당국은 본인부담금을 더 높이고 비급여 한도를 설정한 ‘4.X’세대 상품을 설계해 절차를 거쳐 내년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실손 개혁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인데 중요한 시기에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며 “국가적 비상 상황 속에 실손 개혁 실무자들의 ‘운신의 폭’도 좁아져 걱정”이라고 말했다.
다른 한 편에선 이럴 때일수록 의료개혁특위가 힘을 내야 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4000만 명 실손 가입자를 위한 개혁인데 윤 대통령이 정치·사법적 위기에 처했다고 해서 동력을 잃을 이유가 있냐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까지 노력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선 안 된다”면서 “의료개혁특위와 금융위는 계획한 일정대로 연내에 개혁안을 발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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