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배당액을 알지도 못한 채 배당 투자를 하게 되는 ‘깜깜이 배당’ 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가운데 이에 동참해 정관을 바꾸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다만 정관을 바꿔놓고도 실제로 배당 절차를 개선하지 않은 기업이 70%를 넘는 만큼 참여도를 높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이후 배당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주주총회 등을 통해 정관을 변경한 기업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지역난방공사를 비롯해 신세계·현대리바트·교촌에프앤비·동원산업·애경산업·콜마홀딩스·하이브·BGF 등이 매년 12월 31일 결산기말로 고정된 배당기준일을 이사회 결의로 정하는 날로 변경했다. 이사회 결의를 통해 배당액 등이 결정된 이후 투자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GS는 지난 9일 “주주들의 배당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이사회 결의로 배당기준일을 정하도록 정관을 개정했다”고 공시했다. 코스닥 상장사 이녹스첨단소재도 “배당금액 확정 후 배당기준일 확정하겠다”라는 내용을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공시에 포함했다.
정부가 지난해 1월 배당기준일 이전에 배당금액을 확정해 공시하도록 제도를 개선한 이후 이에 동참하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3월 말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전체 상장기업 2434개 가운데 31.9%(777개)가 배당기준일 변경을 위한 정관 개정 작업을 마쳤다. ‘선(先) 배당액 확정, 후(後) 배당기준일 지정’으로 바뀌면 외국인 등 투자자들이 배당 지급 여부나 구체적인 배당액 등을 보고 투자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투자자들은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주주를 확정하는 배당기준일 이전에 배당 여부 등을 미리 알기가 어려워 국제 기준에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다만 배당기준일 개선은 기업의 자율적 선택으로 실제로 제도를 개선한 사례가 많지 않아 제도가 안착됐다고 보긴 어렵다. 자본시장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지난해 배당을 지급한 기업 1176개사 가운데 정관을 변경하고 이에 따라 깜깜이 배당을 실제로 개선한 기업은 91개사(7.7%)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기업은 정관도 바꾸지 않고 제도도 개선하지 않은 셈이다. 정관을 바꾼 기업 336개사 중에선 91개사(27.1%)가 절차를 바꿨으나 나머지 245개사(72.9%)는 기존 방식을 그대로 고수했다.
국내 증시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연말로 갈수록 고배당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만큼 배당 절차 개선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200 고배당’, ‘코스피 고배당50’, ‘코스피 배당성장50’ 등 한국거래소 산출 주요 배당 지수들은 코스피 지수를 15%포인트 이상 성과가 좋은 상태다.
주주들이 배당 정책 변화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을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배당기준일 제도 개선은 한국 자본시장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라며 “제도 정착을 위해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배당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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