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태양광 산업은 중국 기업에 잠식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12일 산업통산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보급된 태양광 셀(설치 용량 기준) 중 중국산 비중은 74.2%에 달했다. 2019년 33.5%에서 2배 이상 급증했다. 그 사이 국산 셀 비중은 50.2%에 25.1%로 낮아졌다. 2015년 발효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로 태양광 셀에 관세가 부과되지 않으면서 값싼 제품이 물밀듯 밀려 들어왔다. 정부가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을 통해 태양광 시장을 확대했지만 그 과실은 국내 업체가 아닌 중국 측이 가져갔다. 중국은 현재 셀 뿐만 아니라 태양전지, 태양전지를 만드는 폴리실리콘 등에서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최근 업계에서는 국내 풍력시장 또한 태양광처럼 중국에 의해 산업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세계 5위 풍력발전용 터빈 제조사인 중국 밍양에너지가 사실상 우회진출을 통해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다. 밍양에너지는 국내 풍력발전 기업 유니슨과 각각 45%, 55% 비율로 합작사 유니슨·밍양에너지를 설립했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기업결합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유니슨·밍양에너지는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경남 사천에 15㎿급 풍력터빈 생산 공장을 건설할 계획까지 세워놓았다. 전남 신안군 압해읍 해상에 80MW 규모로 추진 중인 압해해상풍력발전단지 프로젝트에 6.5MW급 해상터빈 13기를 공급하는 입찰에도 참여한 상황이다. 유니슨 단독으로 입찰 참여한 한빛해상풍력 프로젝트 또한 향후 밍양에너지의 참여가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자국 해상풍력 시장에서 규모를 키운 중국 업체는 기술과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국내 업체와 비교조차 어려울 정도로 앞서있다"며 "무방비로 시장이 열린다면 태양광 시장처럼 국내 업체는 대부분 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유니슨 측은 “한빛해상풍력 프로젝트에 밍양에너지가 참여할 가능성 없다”고 해명했다.
밍양에너지가 유니슨과 합작회사를 만든 것은 사실상 정부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조치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부터 풍력발전사업 업체 선정 시 가격 외에 경제 안보와 국내 공급망 기여도 비중을 더 높여 반영하기로 했다. 중국을 포함한 해외 기업의 무분별한 진입을 막기 위해 입찰 문턱을 높인 것이다. 실제 국내 풍력 터빈 시장에서 국내 업체의 점유율은 2019년 53%에서 지난해 13.3%로 수직 낙하했다. 2022년에는 아예 국산 터빈이 쓰이지 않았다. 기술력과 공급망이 탄탄한 유럽 기업에 더해 중국 기업이 공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설 자리가 급속도로 축소되자 정부가 뒤늦게 나선 셈이다.
하지만 밍양에너지가 유니슨과 합작법인을 만들면서 국내 기업을 우대하려던 제도 변화가 무색해졌다. 유니슨·밍양에너지는 유니슨의 지분이 55%로 더 많기 때문에 한국 기업으로 분류된다. 국내 기업이 아직 개발하지 못한 15㎿급 터빈 기술을 유니슨에 이전하고 국내 공장 설립까지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공급망 기여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산업부는 현재 0.15GW(기가와트)에 불과한 해상풍력 보급 규모를 2030년 14.3GW, 2036년 26.7GW로 늘릴 계획이다. 밍양에너지를 시작으로 중국 업체의 우회 진출이 가속화하면 태양광 시장과 같이 또다시 중국의 ‘앞마당’이 될 수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중국의 풍력 업체들이 유니슨·밍양에너지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국내 정착에 성공한다면 유사한 형태의 추가 러시가 밀려올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중국이 터빈 시장 뿐 아니라 블레이드(풍력기 날개)와 기어박스, 해상 케이블 등 다른 풍력발전 부품 시장에서도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입찰된 영광 낙월 해상풍력단지 프로젝트에는 중국 기업이 지분 100%를 보유한 벤시스가 터빈 64기를, 중국 1위 전선업체 형통광전이 해저케이블을 공급하게 됐다. 이와 함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풍력단지 공사 현장에 중국 선박과 인부들이 대규모로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풍력산업 생태계가 파괴될 우려가 제기되는 지점이다.
일각에선 중국이 한국을 거점으로 미국 풍력발전 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합작법인과 국내 공장을 통해 중국산 무역 규제를 충분히 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산업 생태계를 넘어 안보적 측면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해저테이블을 깔게 되면 바다 밑 자원과 잠수함 이동 경로 등에 대한 정보도 파악 가능하다"며 "안보적 측면의 접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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