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다승왕 다툼은 한 편의 잘 짜인 경주 같았다. 강자들 사이의 균형이 끝까지 유지된 가운데 마지막에 관중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 추입마는 마다솜(25·삼천리)이었다. 뒤에서 기회를 엿보다 마지막 주로에서 폭발적인 질주로 결국 공동 다승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마다솜은 시즌 마지막 2개 대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9월 말부터 40여 일 동안 3승을 몰아쳐 박현경·박지영·이예원·배소현(이상 3승)과 다승왕에 올랐다. 막판 기세가 워낙 무서웠으니 시즌이 끝나는 게 가장 아쉬운 이는 마다솜일 것 같았다.
12일 그에게 ‘만약 한두 대회가 더 있었다면 4승으로 단독 다승왕을 하지 않았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마다솜은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골프가 계속 잘 칠 수 있는 것은 또 아니잖아요. 저도 체력적으로 좀 떨어져 있는 상태였고 3승도 정말 만족하기에 ‘잘 끝내서 홀가분하고 좋다’는 마음이 전부입니다.”
엄마와 단둘이 홍콩 여행을 다녀오고 사랑니를 뽑는 등 마다솜은 겨울 훈련을 떠나기 전의 짧은 휴식 기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물론 쉬면서도 근력 운동과 퍼트 연습은 놓지 않는다.
막판 6개 대회 3승의 괴력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마다솜은 “시즌 막바지라 피로가 누적돼 있고 정신적으로도 최상의 컨디션은 아닐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내려놓게 되는 게 있더라”며 “마음을 편하게 먹은 게 득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슬로 스타터’ 기질은 예전부터 있었다고. “아마추어 때도 초반보다는 중반 이후에 잘 쳤어요. 돌아보면 초반에 실패를 많이 경험하고 나서 그것을 빨리 고치려 하는 과정에서 잘못했던 것들을 이겨내고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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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개막 후 톱10이 한 번뿐일 정도로 고전하다가 9월 말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에서 마지막 날 61타를 치고 2위를 무려 9타 차로 물리친 것도 신기하다. 마다솜은 “직전 대회에서 컷 탈락하기는 했지만 흔들리던 티샷이 조금 잡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 대회부터 자신 있게 드라이버를 치기 시작했다”며 “시즌 초중반에 티샷 때문에 애를 먹다 보니 페어웨이가 아닌 곳에서 다음 샷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덕분에 쇼트 게임이 레벨업됐는데 이런 것들이 더해져서 우승으로 이어졌다고 본다”고 했다.
마다솜은 S-OIL 챔피언십에서 역대 열한 번째 노 보기 우승 기록을 썼고 시즌 최종전 SK텔레콤·SK쉴더스 챔피언십에서는 최종일 공동 16위로 출발해 끝내 우승했다. 통산 4승의 그는 이 중 3승이 연장 우승이다. 네 번의 연장 승부에서 세 번을 이겼다. ‘가을 여왕’에 이어 ‘연장전 여왕’ 별명도 얻은 마다솜은 “처음 치른 연장전 때 티샷을 물로 보낸 바람에 졌다. 우승 여부를 떠나 아쉬움이 컸다”며 “이후로는 너무 지르는 것보다 확률 높은 쪽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가져가고 있다. 그게 주효한 것 같다”고 했다.
외동딸인 마다솜은 ‘자기 주도형’ 삶을 살아온 듯하다. 가족 여행으로 찾았던 캐나다 밴쿠버에 푹 빠져 초등학교 2학년 때 유학을 결정했다. 부모 없이 3년을 밴쿠버에서 학교를 다녔다. 방학 때 한국에 들어와 재미로 골프를 배웠는데 거기 또 빠져서 캐나다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선수 지망생이 됐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 프로 턴도 미뤘고 대학 3학년 때 3수 끝에 태극 마크를 달았다. “2020년 한 해 대표 생활을 했어요. 팀에 서너 살은 기본이고 일곱 살 어린 친구도 있었는데 그래도 잘 지냈던 것 같아요.”
정규 투어 데뷔도 다소 늦은 스물세 살에 했다. 그래도 조바심 같은 것은 모른다. “좀 늦은 만큼 좀 더 오래 하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30대 중후반까지는 무조건 선수 생활해야죠. 롱런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꾸준하게 성적을 낸다는 얘기니까 쉬운 일은 아닐 거예요.” 마다솜은 “발전도 중요하지만 지금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년 목표는 다승과 상금 20위 안에 드는 것이다. 나중에 ‘참 오래가는 선수’로 기억되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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