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업무를 넘어 어려운 과학 연구와 논문 작성을 도와주는 과학자용 인공지능(AI) 에이전트(비서)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올해 단백질 구조 분석 AI모델 ‘알파폴드’ 개발진이 노벨화학상을 받으며 과학기술 분야에도 AI의 파급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과학계 전반으로 생성형 AI 도입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12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AI 비서를 활용한 연구 플랫폼인 버추얼랩(가상연구실)과 이를 활용해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물질인 나노바디(단일도메인항체) 92종을 설계한 연구성과를 지난 달 사전논문 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에 공개했다.
버추얼랩은 인간 과학자들이 모인 연구실처럼 AI 연구책임자(PI), AI 면역학자, AI 머신러닝(기계학습) 전문가, AI 계산생물학자, AI 비평가 등 각 분야에 특화한 AI 비서들이 서로 협업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 워싱턴대의 ‘로제타’, 메타의 ‘ESM’ 등 계산에 필요한 단백질 구조 분석 AI모델들도 플랫폼에 통합했다. 연구 현장의 AI 활용이 특화모델 개발을 넘어 인간 과학자가 간단히 명령만 내리면 AI 비서 스스로 필요한 협업과 모델 사용을 거쳐 답변을 주는 방식으로 발전한 것이다.
학계뿐 아니라 빅테크들도 과학자용 AI 비서 개발에 뛰어들며 상용화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구글은 전날 새로운 생성형 AI모델 ‘제미나이2.0’과 함께 이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AI 비서 ‘딥 리서치’를 공개했다. 딥 리서치 역시 버추얼랩처럼 AI가 직접 단계별 연구 계획을 짜주고 연구에 필요한 정보를 웹 검색 등으로 모아 보고서 형식으로 정리해준다. 몇 시간짜리 작업을 몇 분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게 구글의 설명이다. 멀티모달(복합정보처리)과 고급추론 기능을 탑재해 텍스트와 이미지는 물론 수학 방정식과 코딩 등 전문용어로 된 질문도 처리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달 범용 AI 비서 ‘코파일럿’에 이어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협업해 지구과학에 특화한 ‘어스 코파일럿’을 선보였다. NASA의 인공위성이 수집한 100PB(페타바이트·100만 GB) 규모의 지구관측 데이터를 과학자는 물론 일반인도 수 초만에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만든 대화형 서비스다. 지형지물과 해수 온도는 물론 삼림 벌채와 허리케인 사이의 관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대기질 변화 등 데이터를 제공해 다양한 지구과학 연구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일본 스타트업 사카나AI는 ‘AI 사이언티스트(AI 과학자)’를 선보였고, 글로벌 학술정보분석기관 클래리베이트도 세계 최대 규모의 학술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웹 오브 사이언스 리서치 어시스턴트’라는 과학 특화 AI 비서를 공개해 주목받았다. 국내에서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세계 최초로 원자력 분야에 특화한 ‘아토믹GPT’를 전날 공개했다. 아토믹GPT는 원자력 분야 공개논문·사전·규정집·보고서 등을 학습해 보고서 작성, 규제 준수 검토, 기술 검증, 표준화 절차, 형상 관리 등 업무를 돕는다. LG AI연구원은 범용 AI 비서 ‘챗엑사원’에 분자 구조와 물성 분석 등 신소재 연구를 돕는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다.
과학 특화 AI 비서는 대학·연구기관을 넘어 산업계에서도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구개발(R&D)은 문헌 분석부터 복잡한 작업들을 일일해 해내야 하는 업무영역”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AI 도입을 통해 시간을 가장 많이 단축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리서치비즈는 전 세계 과학 분야의 생성형 AI 시장 규모가 올해 54억 달러(약 7조 7000억 원)에서 2032년 459억 달러(약 65조 7000억 원)로 연평균 31.4%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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