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을 대거 처분한 뒤 보유 자금을 현금으로 묶어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시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져 섣불리 투자하기보다 관망하는 모양새가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1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은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인 3일 83조 8355억 원에서 11일 86조 3067억 원으로 2조 4712억 원 증가했다. CMA 잔액은 올 8월 23일 88조 1608억 원까지 늘었다가 이달 초 83조 원대까지 감소한 바 있다. CMA는 투자자가 맡긴 자금을 증권사가 국고채나 양도성예금증서(CD)·회사채 등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하루만 맡겨도 시중은행 입출금 통장 이자보다 높은 수익을 주기에 통상적으로는 고금리 시기에 각광을 받는다.
특히 이 기간 CMA 잔액의 증가분은 대부분 개인 자금인 것으로 집계됐다. 개인 CMA 잔액은 3일 71조 6829억 원에서 11일 73조 8873억 원으로 2조 2044억 원이 늘어 전체 증가분의 89.2%를 차지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요동 친 증시 대기 자금은 CMA뿐이 아니다. 투자자 예탁금의 경우 3일 49조 8987억 원에서 11일 52조 9228억 원으로 3조 241억 원 더 증가했다. 신용융자 잔액은 반대로 같은 기간 16조 5658억 원에서 15조 3107억 원으로 1조 2551억 원이 더 줄었다. 신용융자 잔액이 15조 원대를 기록한 것은 2020년 8월 27일(15조 8785억 원) 이후 4년 4개월 만에 처음이다. 투자자들이 최근 위험자산 투자를 지양하고 보유 자금을 대거 현금화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최근 일반 투자자의 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은 것은 가뜩이나 부진했던 국내 증시가 정치 불확실성까지 떠안게 돼 당분간 큰 반등을 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 개인들은 이달 4~12일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서 각각 1조 7573억 원, 6650억 원 등 총 2조 4223억 원어치를 순매도하며 국내 증시에서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개인들은 이날도 코스피지수가 윤 대통령 대국민 담화 이후 등락을 거듭하자 상승장에서도 유가증권시장에서만 2444억 원어치 주식을 내던졌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환율까지 불안정한 흐름을 보인 뒤로는 해외 주식조차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매집하지 않는 모양새다.
증시 전문가들은 정치 불확실성으로 한국의 경제 기초 체력 자체가 흔들리게 된 만큼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증시에 참여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시장 상황이 워낙 녹록지 않다 보니 국내 대다수 증권사들은 코스피가 내년 3000선을 돌파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등 각종 정책도 현재로서는 별 다른 효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정여경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탄핵 정국으로 이달 골목상권 매출과 외국인의 국내 소비가 5% 훼손된다고 가정하면 올해 한국 국내총생산(GDP)이 0.04%포인트 위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재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탄핵 정국이 장기화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증시와 금융시장 전반의 변동성이 당분간 커질 것”이라며 “저가 매수세 유입으로 최근 증시가 반등했으나 정치 리스크를 경계한 차익 실현, 업종 순환매가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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