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테리시스는 지연 또는 지속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로 영국의 물리학자 앨프리드 유잉이 사용하면서 과학 용어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쇠에 자기장을 가하면 자성을 띠는데, 일정 시간 후 자기장을 제거해도 자석의 성질이 남아 있는 현상을 설명할 때 쓰인다. 한 번 찌그러진 깡통을 완벽하게 다시 펼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다. ‘히스테리시스 효과’는 외부의 충격이 사라지더라도 본래 상태로 쉽게 돌아가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이후 심리학·경제학 등으로도 확장됐다. ‘이력 효과’ 혹은 ‘상흔 효과’라고도 한다.
경제학에서는 1980년대 들어 히스테리시스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국의 경제학자 올리비에 블랑샤르와 로런스 서머스는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유럽의 고용 시장이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진 현상을 히스테리시스 효과로 분석한 논문을 1986년 발표했다. 이후 히스테리시스는 과거의 경제 충격이 사라지지 않고 국내총생산(GDP)과 고용 등 경제지표에 계속 부정적 영향을 주는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정착됐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는 23개국 사례들을 분석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GDP의 영구적 손실이 평균 8.4%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특히 코로나19 당시 백신이 개발되더라도 경제가 과거의 경로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면서 히스테리시스 효과가 다시 주목받았다.
우리 경제에서 이력 효과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중국의 기술 추격, 국내의 정치적 혼란이 겹치며 장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기 침체가 길어질 경우 고용 시장 붕괴, 자본 축적 부진, 연구개발(R&D) 차질 등으로 인해 기존 성장 경로로의 복귀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성장 동력을 재점화하고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구조 개혁과 규제 혁파, 초격차 기술 개발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 불안을 해소하면서 경제 회복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찌그러진’ 경제를 방치하면 미래 여건이 좋아져도 회복이 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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