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파운드리 사업부가 중국 반도체 설계 회사들을 고객사로 확보하기 위한 현지 영업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 파운드리 수장에 오른 한진만 사장이 강조했던 레거시(구형) 공정에서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반도체 붐’이 일어난 중국 시장을 전방위적으로 공략하는 점이 눈에 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송철섭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부사장은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전시회 ‘ICCAD 2024’에서 삼성 파운드리 현황과 로드맵을 공개했다.
송 부사장은 이 발표에서 다양한 모바일 기기용 칩을 제조할 수 있는 삼성의 공정을 밝혔다. 우선 스마트폰의 ‘두뇌’ 역할을 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는 2027년부터 3차원(3D) 패키징을 본격적으로 적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인공신경망장치(NPU) 등을 타일 형태로 따로 만들어서 마치 한 개의 반도체 칩처럼 조립하는 ‘칩렛’ 기술을 설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신에 관여하는 무선주파수(RF) 칩은 기존 14㎚(나노미터·10억분의 1m) 기술을 5나노 공정으로 업그레이드해 2026년부터 도입하겠다는 계획도 알렸다. 디스플레이구동칩(DDI)은 17나노를 적용한 새로운 공정을 2027년에 적용한다. 전력이 72%나 절약되고 회로의 면적은 46% 줄일 수 있다. 전력반도체(PMIC), 이미지센서용 신호처리장치(ISP)에 관한 미래 공정과 양산 시점 또한 공개했다.
발표에서 첨단기술 동향과 함께 레거시 공정에 관한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는 점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4나노 이상 공정을 레거시로 분류하는데, 삼성은 대만 TSMC를 추격하기 위해 3나노 이하의 최선단 공정 시장을 공략해왔다.
이번 발표는 한 사장이 9일 레거시 공정의 중요성을 강조한 직후 선보인 로드맵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한 사장은 파운드리 사업부 임직원에게 “성숙(mature) 노드 사업은 선단 노드의 사업화에 필요한 시간과 자원을 지원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업”이라며 “추가 고객 확보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레거시 공정은 삼성 파운드리의 중요한 ‘캐시카우’ 중 하나다. 현재 오스틴 공장과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일부에서 운영되는 7나노 이상 레거시 공정은 삼성 파운드리 사업 매출의 70%가량을 차지한다. 삼성 파운드리의 기반이 되고 있는 레거시 분야에 더욱 집중해 향후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확보하겠다는 한 사장의 전략이 사업부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파운드리 업체들이 버티고 있는 현지 시스템반도체 시장을 파고든 점 역시 포인트다. 중국 파운드리 업계는 SMIC·화훙반도체 등을 필두로 레거시 반도체 수요가 크게 늘어난 현지에서 저가 공세를 펼치며 삼성 파운드리의 중국 영업에 위협을 주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10나노 공정으로 테슬라 자율주행 칩을 생산하는 등 레거시 공정에서도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며 “중국의 다양한 시스템반도체 업체들을 공략하면서 반등의 기회를 노리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