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상업용부동산에 투자하는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 펀드가 전액 손실 위기에 놓였다. 정부기관이 입주해 있는 빌딩이지만 부동산 시장 침체로 자산 매각에 실패한 후 채무불이행이 발생하자 반년 만에 채권자가 자산 강제 처분에 나선 탓이다. 주요국 금리 인하 속도가 더뎌지면서 해외 부동산 시장 회복이 불투명해진 만큼 국내 펀드 손실도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한국투자신탁운용 자회사인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이달 16일(현지 시간)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파생형)’와 관련해 선순위 대주로부터 만기 채무불이행에 따른 자산 강제 처분 결과를 통보받았다. 펀드는 자산을 보유 중인 특수목적법인(SPC) 지분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사실상 전액 손실이 발생하게 됐다. 폐쇄형 펀드로 거래가 가능했으나 18일부터 상장폐지 결정 시까지 거래마저 정지됐다.
해당 펀드는 벨기에 법무부 산하 기관인 정부건물관리청(RDB)이 입주해 있는 투아송도르 빌딩의 장기임차권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2019년 6월 설정됐다. 한투리얼에셋운용은 공모와 사모를 나눠 900억 원을 펀드로 모집한 뒤 나머지 금액을 현지 대출을 통해 매입 자금 1898억 원(원·유로 환율 1300원 기준, 1억 4530만 유로)을 조달했다. 선순위와 중순위 대주에게 각각 7262만 5000유로, 1452만 5000유로를 대출받았다.
문제는 2022년 이후 인플레이션과 주요국 금리 인상 등으로 유럽의 상업용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침체됐다는 것이다. 해당 건물에 대한 가치 평가액은 2020년 말 1억 4600만 유로에서 2022년 말 1억 3250만 유로로 하락한 이후 추가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펀드의 순자산총액도 설정 초기 900억 원 수준에서 지난해 9월 229억 원까지 떨어졌다. 운용사는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자산 매각과 함께 차환(리파이낸싱)을 추진해왔으나 시장 침체 여파로 결국 실패했고 올해 6월에는 선순위 대출 만기일에 대출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까지 발생했다.
한투리얼에셋운용은 선순위 대주에게 담보권 행사 정지를 요청하면서 시장 반등을 기다렸다. 특히 유럽중앙은행(ECB)이 올 6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선 이후 오피스 부동산 시장이 점차 침체를 벗어날 것을 예상하고 펀드 만기를 올해 6월에서 2029년 6월까지 5년 연장하기도 했다. 자산 가격이 회복되면 차환을 통해 선순위 대출을 상환하려고 했으나 기대만큼 시장이 반등하지 않아 끝내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투리얼에셋운용 관계자는 “현지 법무법인을 통해 강제 매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소송이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다”며 “현지 청산 후 상장폐지될 예정으로 잔존 가치와 청산 일정은 추후 별도로 알리겠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최소한 내년까지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국내 운용사들이 집중 투자한 오피스 시장 부진이 심각하다. 해외 부동산 펀드에 투자한 개인투자자 수도 2만 3000명(자본시장연구원 추산)으로 펀드 손실 여파가 국내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해원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주요국 시장금리가 하락하고 있으나 여전히 팬데믹 이전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어느 정도 부동산 가격 회복으로 이어질지 불투명하다”며 “특히 오피스는 재택근무 등 구조적 변화 등으로 가격 낙폭이 가장 컸고 향후 수요 회복도 제한적이라 부실화할 위험이 적지 않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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