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출범할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실리콘밸리 인사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다. ‘페이팔 마피아’와 벤처캐피털(VC) 등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측근 위주의 인선이 잇따르면서 미래 권력 판도가 바뀌는 양상이다. 트럼프·머스크에 대립각을 세우던 진보 성향의 실리콘밸리 인물들마저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며 ‘미래 권력’에 바싹 엎드리고 있다.
23일(현지 시간) 미 CNBC 등은 실리콘밸리의 대표 VC인 앤드리슨호로위츠(a16z) 파트너인 스콧 쿠퍼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인사관리국 국장으로 지명됐다고 보도했다. 인사관리국은 공무원 채용을 조정·관리하는 부서로 정부효율부(DOGE)와 긴밀히 협업할 것으로 전망된다. 쿠퍼는 지명 후 X(옛 트위터)에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를 도와 효율성을 연방정부의 핵심 원칙으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전날에도 a16z 파트너 출신인 스리람 크리슈난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인공지능(AI) 수석정책고문으로 임명했다. 크리슈난은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스냅, 야후 등을 거친 실리콘밸리의 터줏대감이다. 머스크가 2022년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 경영을 돕는 등 가까운 관계로 알려져 있다.
머스크와 페이팔을 공동 창업한 ‘페이팔 마피아’의 합류도 속속 이어지고 있다. 페이팔 출신 인물들은 2002년 기업 매각 후 창업 및 스타트업 투자에 연쇄적으로 나서며 실리콘밸리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는 페이팔 공동창업자인 켄 하워리를 덴마크 주재 미국대사로 지명했다. 하워리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주스웨덴 대사를 지낸 바 있다. 머스크는 텍사스 오스틴에 위치한 하워리 소유의 저택에 거주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페이팔 마피아의 일원인 데이비드 색스 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COO)도 백악관 AI·가상자산 총책임자(차르)로 임명됐다.
공화당 친화적인 테크계 인물들은 실리콘밸리 인사가 행정부 내 주요 직위에 합류하는 데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클라우드 업체 박스 CEO인 에런 레비는 “국가적 변곡점에서 기술에 초점을 둔 강력한 리더들을 정부에 두고 미래를 향한 정책들을 추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1기 집권 당시 갈등 양상을 보이던 진보 성향의 빅테크 인사들도 ‘줄 대기’에 나서는 모습이다. 실리콘밸리는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나 예측 불허인 트럼프 2기 정권 앞에서는 정치색보다는 기업 보호가 우선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트럼프가 “집권 시 감옥에 넣겠다”고까지 언급했고 머스크와 결투 논의까지 오갔던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도 플로리다 마러라고를 찾아 트럼프와 식사를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원이자 머스크와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 역시 트럼프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를 통해 캠프에 접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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