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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농산물 안정적 수급, 무엇이 필요한가

한두봉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수입 제한돼 가격 급등' 사실 아냐

폭염 등 기후변화 영향 더 커

재해예방·유통혁신 힘 모아야

한두봉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




농산물 수급의 안정을 저해하는 주요 원인은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낮은 농업 생산성, 농산물 유통 구조, 무역 개방도 등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최근 농산물 수급에 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바로 이상기후다. 올해 우리는 기록적인 폭염 등 극한 기후를 직접 경험하며 본격적인 ‘기후위기·기후물가 시대’에 접어들었다.

농업은 다른 산업과 달리 토지 의존도가 높다. 자본과 노동을 추가하더라도 토지가 부족하면 생산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서 5000만 명의 인구를 먹여 살려야 한다. 국토 면적이 넓은 미국이나 국경 없이 유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유럽에 비해 농산물 가격이 높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시장 개방도가 낮아 고물가가 지속된다는 비판도 사실과 다르다. 우리나라는 그간 59개국 21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등 농산물 시장 개방률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를 토대로 농산물은 민간을 중심으로 현재도 자유롭게 국내에 들어오고 있다. 다만 생육 기간이 짧고 저장성이 낮은 상추·깻잎 등은 수입 자체가 곤란한 점이 있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한 콜드체인 등 물류·운송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해 가격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 씨를 뿌린 뒤 약 20일이면 수확할 수 있는 상추의 경우 수입 절차를 거쳐 국내에 유통되기 전에 국내 공급이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수입 확대로 인해 국내 농업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이는 국산과 수입 농산물에 대한 수요가 다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배추 공급 불안으로 가격이 급등하고 식당에서 김치가 사라져도 소비자들은 중국산 수입 배추를 구매하는 것을 꺼릴 것이다. 이렇듯 소비 시장이 다른 품목의 경우 수입을 확대하더라도 국내 농업 기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다.

농산물 유통비용 문제도 제기된다. 하지만 유통비용은 유통 과정상 필수적인 포장비·인건비 등의 비용을 포함한 개념으로 유통상들의 이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해진 소비자 선호에 부합하기 위한 소포장, 저온 유통, 신속 배송 등 부가가치를 제고하는 활동도 유통비용에 포함되므로 무조건 유통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타당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또 농산물은 부피가 크고 저장이 어려워 감모량이 많다는 특수성도 고려돼야 한다. 다행히 정부는 온라인 도매시장 등 다양한 유통 경로를 활성화하고 상호 경쟁을 촉진하고자 하고 있다. 산지 계약재배 활성화, 물류 체계 개선 및 정보 시스템 고도화, 비축 시설 현대화, 공공 비축 확대, 도매시장의 효율화 등 유통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정부의 농산물 유통 혁신 대책이 차질 없이 추진된다면 국민이 신선한 농산물을 싼값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재해 예방 시설 확충, 생육 관리 강화 등 우리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정부에서 연말까지 기후변화에 대응한 농산물 수급 관리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이상기후에 대비한 선제적 조치로 우리 농업 기반을 지킬 수 있도록 모두의 힘을 모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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