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식품업계는 소비가 부진한 내수 대신 해외 시장에서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다. 대중음악을 비롯한 한국산 콘텐츠가 먼저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K푸드’에 대한 호기심도 덩달아 오른 영향이다. 이 때문에 주요 제조사들은 해외 생산 거점을 확보하는 작업에도 적극적이었다.
◇라면 수출 ‘10억불 고지’ 돌파=27일 농식품부와 관세청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11월까지 한국산 라면의 수출액은 11억382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8억7596만달러 대비 30.0% 늘었다. 이미 작년 연간 수출액인 9억5240만달러를 넘어 ‘10억불 고지’를 처음 돌파한 수치다. 전통적 효자 품목인 라면 외에도 11월까지 과자류·음료·쌀가공식품까지 수출 시장에서 줄줄이 역대 최고 성과를 냈다.
가파른 성장세는 한국산 드라마나 영화 같은 콘텐츠의 인기가 가공식품으로도 고스란히 옮겨붙은 결과로 해석된다. 온라인 상에서 늘어난 K푸드의 노출은 해외 소비자들의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삼양식품의 경우 해외 젊은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불닭 챌린지’가 선풍적으로 유행하면서 이 브랜드로만 1조원의 글로벌 매출을 넘겼다. 해외 시장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사례도 연달아 나왔다. 올해 CJ제일제당은 5년 전 미국 냉동식품 기업 ‘슈완스’를 인수한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현지 일반소비자용(B2C) 만두 시장을 장악했다. 농심도 신라면 ‘툼바’와 ‘똠얌’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글로벌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각각 북미와 동남아 시장에 적합하다고 평가받는 제품들이다. 글로벌 소비자들에게는 아직 낯선 발효식품도 현지화를 통해 해외 시장을 공략했다. 빵에 발라먹는 잼 형태로 개발된 대상의 ‘김치 스프레드’가 대표적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에 힘입어 올해 해외 생산기지 확보도 잇따랐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헝가리 부다페스트 근교에 신공장 부지를 확정하고 설계에 들어갔다. 동시에 미국에선 자회사 슈완스가 사우스다코타주에 북미 최대 규모 아시안 식품 생산 기지 건설에 돌입했다. 두 시설은 각각 만두를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 사업 대형화를 위한 전진 기지 역할을 맡게 된다. 삼양식품은 최근 첫 해외공장 부지로 중국 자싱시를 낙점하고 이를 운영할 법인을 싱가포르에 설립했다. 농심은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2공장에 용기면 고속 생산 라인을 추가했다. 롯데웰푸드도 인도 법인 하리아나 공장에서 빼빼로를 현지 생산하기 위해 올 1월 약 330억원의 신규 설비 투자를 단행했다. 2025년 중반께 본격적인 가동이 목표다.
◇내수 소비 부진…국제 원료 시세도 부담=반면 내수 시장에선 찬바람이 불었다. 지난 4·10총선을 앞두고 정부에 의한 가격 통제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많았던 해다. 관료들이 가공식품 제조공장이나 본사를 순회하며 가격 동결·인하를 거론한 것은 역대 정부 사례에 비춰볼 때 이례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다만 이 같은 압박에도 불구 하반기부터 가격 인상 움직임은 본격화됐다. 올해 김·올리브유·카카오·커피 등 원료의 국지 시세가 폭등하며 가공식품 뿐만 아니라 외식 물가에도 동시다발적인 영향을 미쳤다. 최근 식품업계가 지속적으로 고환율로 인한 원재료 부담 급등을 호소하고 있는 데다 탄핵 국면으로 정부 가격 통제 기능이 약화돼 내년에도 인상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고속 승진으로 경영 전면에 등장한 식품업체 오너가 3세들에게는 각 사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신동원 농심 회장의 장남 신상열 미래사업실장은 11월 정기 임원 인사에서 입사 5년 만에 전무에 올랐다. 누나인 신수정 음료 마케팅 담당 책임도 상무 명단에 들었다. 오리온그룹은 23일 담철곤 회장의 장남인 담서원 한국법인 경영지원팀 상무를 2년 만에 전무로 승진시켰다. 1994년생인 전병우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장(CSO)은 헬스케어와 콘텐츠를 중심으로 불닭 의존도를 낮출 신사업에 매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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