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행 체제'를 맞아 전 세계 주요국 정상 사이서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이 불과 3주 남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통화는커녕 핵심 주요국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통화마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국 외교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31일 외교부와 관가 등에 따르면 최 권한대행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시바 일본 총리와의 통화를 두고 조율을 이어가고 있지만 큰 진전이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전해졌다. 앞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체제에서는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의결 하루 뒤인 15일 오전 7시 15분 한 전 권한대행과 바이든 대통령의 통화가 16분간 이어지며 한미 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했고 이시바 총리와도 5일 뒤인 19일 오전 9시부터 20분간 전화를 하며 수교 60주년을 맞는 한일 관계를 잘 관리해나가기로 의견을 모은 바 있다.
소위 ‘대대행 체제’에서 최 권한대행의 입지가 그리 탄탄하지 못한 만큼 타국 정상은 물론 우리 외교가에서도 쉽사리 정상 간 통화 일정을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거대 야당이 국무위원의 줄탄핵에 나서는 만큼 최 권한대행마저 언제 자리를 잃을 지 모른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외교부가 국가 위기 속에서 소극적, 방어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세계 각국 정상이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두고 희생자 유족과 우리 국민에 애도와 위로를 전하는 와중에도 최 권한대행은 소외되는 모습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앞서 2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영부인) 질과 저는 무안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에 대해 깊은 슬픔을 느낀다. 가까운 동맹으로 미국 국민은 한국 국민과 깊은 우정의 유대를 공유하고 있다”면서 “이번 비극으로 영향을 받은 분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한다. 미국은 모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애도했다.
이시바 일본 총리는 “일본 정부와 일본 국민을 대표해 희생자와 유족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애도의 뜻을 표하고 부상한 분들의 하루라도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고 말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 권한대행에 위문 전보를 보내며 “삼가 중국 정부와 중국 인민을 대표해 희생자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고 희생자 가족에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하며 부상자가 속히 건강을 되찾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어려운 상황인만큼 외교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외교계 전문가는 “기껏 정상 간 소통 자리를 만들었는데 최 권한대행이 직을 또 잃는다면 외교부에서도 난감해질 수 있다”면서도 “한국의 대외 신인도를 유지하고 국내 혼란 속에도 급변하는 국제정세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라도 소통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불과 3주 앞으로 다가온 ‘트럼프 2기’ 출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발빠른 접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내에서는 중국·러시아·이란·북한의 반미 연합읠 약화하기 위해 트럼프 당선인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분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이 패싱된 채 미북 접촉이 이뤄질 경우 우리 입장에선 상상하기도 싫은 ‘핵보유 인정 및 군축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 현재 트럼프 당선인과의 교류는 민간 차원에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마러라고 회동’ 정도다. 일각에서는 전 정부 인사지만 트럼프 1기 당시 그를 여러번 만났던 정의용 전 안보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 등의 인사를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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