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은행의 달러 예금 잔액이 지난 한 달 사이 2조 7000억 원가량 증가했다. 비상계엄부터 거듭된 탄핵까지 비상 정국으로 원·달러 환율이 상승 추세인 데다 원화 예금보다 금리도 높아 수요가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달러 예금 잔액은 629억 9000만 달러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2일 611억 7700만 달러 대비 18억 1300만 달러(약 2조 6680억 원) 늘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환율이 급등(1390원대→1410원대)하자 대거 차익 실현이 이뤄진 4일(605억 5900만 달러)과 비교하면 잔액 증가 폭은 24억 3100만 달러(약 3조 5780억 원)나 된다.
달러 예금이 증가한 배경에는 환율이 앞으로도 고공 행진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비상 정국으로 1400원대를 뚫은 환율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1695원) 이후 27년 만에 가장 높은 1472.5원(주간 거래 종가)으로 해를 마쳤다. 환율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에 달러를 매수해 예치하려는 수요가 커졌다. 환율이 단시간 내 급등하자 하루 사이에 조 단위로 예금 잔액이 늘었다가 줄어드는 상황도 연출됐다. 20일 13억 4100만 달러(약 1조 9740억 원) 감소한 달러 예금 잔액은 바로 다음 날인 21일에는 11억 4400만 달러(약 1조 6800억 원) 증가하며 요동쳤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환율 상승으로) 차익 실현과 추가 매수가 숨 가쁘게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달러 예금이 미국 기준금리(4.25~4.5%)를 기준으로 하는 만큼 은행 원화 예금보다 금리가 높은 것도 달러 예금을 선호하는 원인이다. 실제로 이날 기준 5대 은행의 달러 예금 금리(1년 만기, 연이율)는 3.63~4.15%로 우대금리를 포함한 원화 정기예금금리 최고금리 범위인 3.15~3.22%보다 높게는 1%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은행들이 예대마진을 키우기 위해 대출금리보다 예금금리를 더 빨리 내리는 것도 작용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기업뿐 아니라 개인 고객들도 달러 예금을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달러 예금 계좌 가운데 개인 보유 비중은 30%가량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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