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을미년 새해는 글로벌 경쟁 가속화로 양자과학기술의 ‘퀀텀 점프’가 이뤄지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퀀텀 점프는 입자가 불연속적으로 움직이는 양자역학적 현상으로, 급격한 발전이나 비약적인 성장을 비유하는 말로도 쓰인다. 2030년대 고성능 양자컴퓨터·양자통신 등 양자기술 상용화가 임박하며 각국 정부와 기업이 정책 추진과 기술 개발을 통한 선점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본지 2024년 12월 4일자 1·12면 참조
31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유네스코와 한국물리학회를 포함한 전 세계 물리학회들이 2월 ‘양자 과학기술의 해’ 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도 참석하는 방안이 검토 중이다. 앞서 유엔이 새해를 ‘양자과학기술의 해’로 지정한 데 이어 민간 차원의 정책 제안과 국제 협력 등을 위한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전해졌다. 7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 ‘소비자가전쇼(CES) 2025’에서도 각국이 신기술을 과시하는 양자 특별 프로그램이 열린다.
새해 핵심 기술 트렌드로 양자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와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역학 이론을 세운 지 100년이 되는 ‘양자역학 100주년’이라는 상징성도 있지만 실제 주요국 정부와 기업이 양자산업 진출 준비에 본격 착수한다는 의미도 있다. 유엔은 “양자기술은 기후, 에너지, 식품 안전, 보안, 깨끗한 물을 포함해 2030년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선언을 통해 정부, 기관, 학교가 양자기술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하라”는 취지를 설명했다.
후발주자인 한국은 연초 양자기술과 양자산업 육성을 위한 국가 정책 컨트롤타워(총괄기구)인 국무총리 직속 ‘양자전략위원회’가 출범한다. 어느 정도 무르익은 기술인 인공지능(AI) 산업을 진흥시키기 위한 국가AI위원회가 최근 출범한 것과 비교하면 정부가 정책 구심점 확보를 서두르는 셈이다. 양자전략위원회는 과기정통부를 비롯한 8개 관계부처와 민간 전문가가 모여 양자산업기술법에 따라 사업 육성과 인재 양성을 위한 양자종합계획을 수립한다.
연초 위원회 출범식에 맞춰 국내 첫 20큐비트 양자컴퓨터의 클라우드 서비스 출시와 100㎞ 양자인터넷 시연도 준비되고 있다. 국산 양자컴퓨터가 상용화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며 100㎞ 양자인터넷은 미국·중국에 맞먹는 국내 최장 전송거리를 자랑한다. 또 정부는 수천억 원을 들여 2030년대 1000큐비트의 고성능 양자컴퓨터 개발과 장거리 양자인터넷 실증, 초정밀 양자센서 개발 등을 목표로 하는 양자 분야 첫 대형 연구개발(R&D) 사업 ‘양자 과학기술 플래그십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최근 양자암호통신 상용화를 위한 첫 국가표준도 제정됐다.
산업계 역시 양자암호통신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 중이다. SK텔레콤과 관계사 IDQ, 스타트업들이 모여 2024년 6월 출범한 협력체 ‘엑스퀀텀’은 상호 기술이전 등을 통해 신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고 새해에는 자체 개발 양자암호칩 ‘Q-HSM’의 고객사 확보에 주력할 방침이다. 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와 스타트업도 국산화에 한창이다. 최근 국내 최초의 고성능 제품이 IBM의 127큐비트 양자컴퓨터가 연세대에 도입되면서 상용화 사례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일찍이 2018년 세계 최초로 양자 육성법 ‘국가 양자 이니셔티브법’을 제정했다. 올해 장거리 양자인터넷 핵심기술인 양자중계기를 새로 개발하는 등 신기술 확보에 나설 방침이다. 기술패권 경쟁에 맞춰 2019~2023년 12억 달러(1조 8000억 원)의 예산을 확정했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재집권으로 관련 지원에 다시 힘이 실릴 전망이다. 12월 양자컴퓨터 상용화 걸림돌인 오류정정 문제를 최초로 해결한 양자칩 ‘윌로’를 공개한 구글은 향후 100만 큐비트 연산 성능과 10조 분의 1 오류율 도달을 목표로 고도화를 추진 중이다. IBM도 최근 신형 양자칩 양자칩 ‘퀀텀 헤론’을 선보였다.
중국도 새해에 양자기술 분야에서 퀀텀 점프에 도전한다. 앞서 2016년 세계 최초의 양자통신위성인 ‘묵자호’를 쏘아올린 데 이어 새해 신형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다. 최근 구글 윌로 공개에 뒤이어 동급이라고 주장하는 양자칩 ‘주총즈 3.0’와 504큐비트 양자컴퓨터 ‘톈옌-504’를 선보이는 등 미국과의 기술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양자컴퓨터를 의학 연구에 활용하는 자국 내 최초의 연구소 ‘허페이 양자컴퓨팅·데이터 의학연구소’가 출범하는 등 상용화 준비도 서두르고 있다. 유럽연합(EU)도 관련 예산으로 2027년까지 미국과 맞먹는 10억 유로(1조 5000억 원)를 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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