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대한민국의 새해는 항상 ‘위기’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모든 기업이 위기 경영을 외치며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올해는 정말 위기인 것 같다. 정치·경제·외교 그 무엇도 만만치 않다. 거만하기로 유명했던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위기 때마다 조언을 구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인텔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앤드루 그로브다.
많은 사람들이 인텔을 중앙처리장치(CPU)를 제조하는 기업으로 알지만 창업 당시 이 회사는 메모리반도체를 만들던 회사였다. 1970년 인텔은 세계 최초로 1Kb(킬로비트) 용량의 D램을 상용화하면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에 올랐다.
이후 장기간 메모리 시장을 지배하던 인텔에도 위기가 닥쳤다. 1980년대 초 일본전기(NEC)와 도시바를 비롯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놀라운 수율과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일본 반도체 기업들은 빠르게 성장했고 반도체 가격은 폭락했다.
당시 인텔을 이끌던 사람이 바로 그로브다. 우리가 만약 그 시절 그로브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회사의 창립 근간인 메모리반도체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을 내리고 일본 기업들과 ‘치킨게임’을 시작했을까. 아니면 ‘연구개발(R&D)만이 살길’이라며 기술 인력을 대거 영입하고 추가 투자를 감행했을까.
놀랍게도 그로브는 1985년 회사의 핵심 사업이었던 메모리반도체를 과감히 포기한다. 이후 인텔은 마이크로프로세서(MPU) 기업으로 탈바꿈하며 AMD가 등장하기 전까지 수십 년간 글로벌 CPU 시장을 석권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로브의 결정을 미친 짓이라 비난했지만 그는 묵묵히 회사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누군가 그에게 엄청난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침착한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고 한다. 그로브의 대답은 솔직했다.
“나도 바지에 오줌을 지릴 만큼 겁이 나고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CEO인 내가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직원들은 그보다 훨씬 더 크게 낙심할 것이고 회사는 위기를 극복할 동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꾹 참고 태연한 척, 자신 있는 척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리더의 가장 큰 자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많지만 필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 능력과 배짱이라고 생각한다. 2025년은 비록 위기와 함께 시작됐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담대한 미래와 희망을 이끌어 나갈 많은 리더들이 있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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