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국민의 해외주식 투자 금액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연기금까지 합치면 700조 원에 육박하는데, 이는 코스닥 시가총액 2배에 가까운 규모다. 소위 ‘국장’에 대한 실망이 극에 달하면서 투자 엑소더스(대탈출)가 일어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투자 자금 흐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투자자들은 전 세계 주식이 아닌 미국 주식에 관심을 쏟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의어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이는 엄연히 다르다. 이런 흐름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요즘 미국 증시에 신규 상장하는 기업들의 절반이 외국 기업들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굳이 이를 구분하는 이유는 우리 증시와 경제에 대한 열등감과 비관론이 우려스러운 수준까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미국보다 크게 뒤처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과연 일본이나 다른 서구 국가들과 비교해서도 그렇다고 볼 수 있을까?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가 점점 심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게도 국내 투자자들은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증시가 저평가돼 마땅한 이유를 물어보면 지정학적 위험, 내수 침체 장기화, 낮은 출생률, 높은 가계부채 비율, 제조업 경쟁력 약화 등 저마다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다. 물론 각각 다 맞는 얘기지만 냉정하게 살펴보면 핑계에 불과할 수 있다.
지금 미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의 경제 성장은 멈춰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을 보면 정치 불안도 우리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한류 소비재 산업을 비롯한 새로운 유망 산업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인공지능(AI) 산업 내 경쟁력 등 이들 나라보다 오히려 우월한 측면도 많다.
우리 증시가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 증시보다 명확하게 열위에 있는 부분은 소액주주에 대한 배려 뿐이다. 그런데 지난해 정부의 밸류업 의지 표명 이후부터 이 약점은 매우 빠른 속도로 극복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 추세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국민들의 미국 주식 선호는 장기적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돼 일본처럼 해외투자자들이 매력을 느끼는 시장으로 변모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국내 증시의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런 흐름은 과거처럼 흐지부지될 수 없다.
물론 항상 주식 투자자의 득실이 국가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기업에 대한 배려를 통한 경제성장을 더 중시해야 하는 국면도 많다. 하지만 우리 증시는 오랫동안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불균형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부작용이 커졌다. 기업도 결국은 사업 자금 조달과 인지도 확보 등 주식시장에서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주식시장이 잘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향후에도 국내 투자자들은 우리 증시를 더욱 빠른 속도로 버릴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기업들이 어려워도 이번에는 생존의 단초를 투자자의 이익을 챙기는 것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경제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상호 작용하고 순환하기에, 이것이 오히려 기업의 장기 발전을 위한 시작점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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