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과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로 화석연료 발전을 모두 대체할 경우 2050년까지 96조 원이 넘는 비용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치권과 환경단체에서는 탄소중립 과정에서 원자력을 줄이고 신재생 비중을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재생에너지의 불확실성과 경제적 부담을 고려하면 에너지믹스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경제신문이 6일 입수한 김용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연구팀의 ‘탄소중립 경제로의 전환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력 부문에서 탄소중립을 이행하기 위해 2050년까지 소요되는 비용이 최대 96조 1000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 보고서는 연구팀이 국회예산정책처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것으로 지난해 12월 정책처에 제출됐다.
연구팀은 에너지 부문에서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100% 감축하는 경우를 가정했다. 구체적으로 에너지경제연구원과 2050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분석을 참조해 모든 화석연료를 태양광·풍력으로 전부 대체할 때 필요한 비용을 계산했다. 경제성장에 따라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에너지 발전량도 모두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고 설정했다.
여기에 재생에너지 발전 원가 전망치를 토대로 전력 부문 탄소중립 비용 시나리오를 ‘저·중·고비용’ 등 3가지로 짰다. 그 결과 ‘저비용’ 시나리오에서는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함에 따라 2050년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3조 9000억 원에 불과했지만 ‘중비용’의 경우 45조 1000억 원이 됐다. ‘고비용’ 시나리오에서는 96조 1000억 원에 달했다. 연구팀은 “재생에너지의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추가적인 비용은 예상보다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에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연구팀은 에경연이 2023년 발표한 재생에너지 균등화발전비용(LCOE) 전망치를 토대로 전력 부문 탄소중립에 따른 비용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LCOE란 한 단위의 에너지를 특정 기간 생산할 때 들어가는 평균 비용이다. LCOE 하락 폭이 클수록 향후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이 개선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신재생에너지의 LCOE 하락 폭이 크지 않았다. 저비용 시나리오에서는 태양광의 LCOE가 2050년까지 연평균 5.47%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고비용 시나리오에서는 하락 폭이 1.49%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신재생에너지는 날씨와 기후 등의 영향을 받아 안정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팀은 “재생에너지의 경제성에 대한 미래 불확실성에 따라 탄소중립 비용의 불확실성도 크게 나타난 것”이라고 짚었다.
연구팀은 이 같은 점들을 고려하면 향후 에너지 부문 탄소중립에 있어서는 원전과 다른 무탄소 에너지원을 함께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치 논리에 휩싸여 신재생에너지 육성에만 목을 매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재생에너지의 공급 비용과 수소 가격을 비롯한 핵심 기술 특성치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며 “다양한 위험 요소를 고려한 유연한 정책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재생에너지에만 의존하는 편향적 정책보다는 원자력, 탄소 포집·저장(CCS) 및 수요 관리 등 다양한 대안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며 “특히 특정 기술에 대한 정치적 간섭을 배제하고 시장과 과학을 통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정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너지 업계의 한 관계자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상 2038년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이 32.9%에 달한다”며 “이 수치만으로도 달성이 어려운데 신재생 비중을 더 높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전로강을 수소환원제철로 대체할 경우 2050년까지 소요되는 비용이 최소 5조 9613억 원에서 최대 23조 2602억 원에 달한다고도 전망했다. 연구팀은 “일본·독일에 비해 한국 정부의 수소환원제철 지원은 상대적으로 작은 수준”이라며 “적극적인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 지원을 통해 수소환원제철 기술 확보와 상용화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또 “수소환원제철 기술 상용화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소 공급이 필수적”이라며 “수소인프라 구축과 함께 그린수소 수입처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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