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시도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불허’ 결정으로 불발될 위기에 처하자 일본에서는 ‘동맹국도 외면한 미국의 보호주의’가 이달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차기 정권에서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제철이 소송을 제기하며 강력 반발에 나섰지만 일본 기업들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8년 전 트럼프 1기 당시 노골적인 압박에 시달렸던 ‘악몽’이 재연될까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6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일본제철은 바이든 대통령의 인수 중지 명령 무효화와 재심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미 정부 외에도 US스틸 인수 과정에서 경쟁했던 미국 철강 회사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와 이 회사 경영진, 전미철강노조(USW) 회장도 인수 방해 행위로 함께 제소했다.
일본제철은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의 심사가 헌법상 올바른 절차를 위반했고 불법적인 정치 개입이 있었다는 입장이다. 특히 노조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에서 USW의 지지를 얻어 승리하려는 목적으로 법치주의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일본제철이 법적 다툼에 돌입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지만 다른 일본 기업들의 불안감은 깊어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1기때 ‘관세’를 내건 미국 우선주의로 곤욕을 치른 자동차 기업들은 악몽 재연 우려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회사가 도요타자동차다. 트럼프는 2017년 1월 소셜미디어에 “도요타가 멕시코에 공장을 짓고 미국용 ‘코롤라(모델명)’를 만들려 한다. 미국에 공장을 짓든지 높은 관세를 내라”고 적어 도요타를 공개 저격했다. 이후 도요타는 ‘멕시코 공장으로 인해 미국 내 고용이 줄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해명을 냈고 미국 내 공장 건설 및 투자 확대를 하며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도요타 관계자는 “다시 비슷한 요구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요타는 지난해 11월 멕시코에 미국 시장을 겨냥해 14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발표 직후 트럼프 당선인은 기존에 ‘대미 수출 관세’가 없던 멕시코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알렸다.
마쓰다도 상황은 비슷하다. 미국은 마쓰다 세계 판매의 30%를 차지하는 중요한 시장이다. 대부분 멕시코나 일본에서 제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관세는 마쓰다 경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이 회사는 미국 내 신규 공장 설립이 어려운 만큼 기존 공장 가동률을 높이는 방식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일부 부품 업체는 멕시코에서 추진해온 공장 건설의 완공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방식으로 관세 인상이 가져올 수 있는 자동차 수요 감소에 대비하고 있다.
앞서 1995년에도 관세를 앞세운 미국 정부의 일본 자동차 압박이 있었다. 1995년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미국은 일본의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시장이 폐쇄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도요타를 포함한 일본산 고급차 10여 종에 100%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에서 미국으로의 자동차 수출은 미국 경기 악화와 정치의 계절을 맞을 때마다 무역 마찰의 중심에 놓였다”며 유사한 사례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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