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철근 생산 업체인 현대제철이 연초부터 인천공장과 포항공장의 철근 생산을 멈춘다. 지난해 가동률을 줄이는 방식으로 일부 감산에 나섰음에도 ‘건설 경기 침체 장기화’로 철근 수요가 급감하며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철근 재고가 줄지 않는 상황에서 최근에는 원가 부담까지 늘어나며 철근사들의 감산 기조가 한층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인천공장과 포항공장의 철근 생산 설비를 1월 말까지 가동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특히 철근 소형 공장은 이미 가동을 멈췄다. 이번 결정으로 현대제철의 올해 1월 철근 생산량은 기존 대비 30% 이상 추가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회사는 지난해부터 가동률을 제한하는 등 감산에 나서고 있었는데 올해는 연초부터 주요 공장의 생산 자체를 중단하며 감산 의지를 다잡았다는 해석이다. 회사는 철근 재고 및 가격 등을 감안해 1월 말 이후에도 철근 공장의 가동 중단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 다음으로 철근을 많이 생산하는 동국제강도 올해 생산량을 더욱 줄인다. 회사는 지난해 7월부터 철근 공장을 야간에만 운영하며 가동률을 평년의 65% 수준으로 줄인 데 이어 올해부터는 약 50%까지 축소한다.
철근사들의 지속되는 감산으로 올해 1월에는 현대제철·동국제강 등 국내 8대 철근 제조사들의 생산 계획이 약 48만~50만 톤까지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한 달 생산 능력이 약 100만 톤임을 감안할 때 가동률이 50%도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도 건설 경기 부진으로 철근 시황이 개선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철근사들이 재고가 이미 넘치는 상황에서 가격 하락세를 멈추고 고환율·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한 원가 부담을 최소화기 위해 더욱 강력한 감산 정책을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철근 제조사들이 지난해보다 더욱 강력한 ‘감산’ 카드를 꺼낸 이유는 국내 철근 수요가 올해도 살아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인 것이다. 최근 건설 현장에서 쓰이는 국내 철근 수요는 2010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지난해(11월까지) 총철근 내수 판매량 역시 702만 5000톤으로 전년 동기(848만 8000톤) 대비 20% 가까이 감소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2일 “철근은 대부분 아파트 뼈대 등에 사용되고 수출 물량은 사실상 없어 국내 건설 경기가 업계 시황을 좌지우지한다”며 “그나마 자동차·조선 등 호황으로 수요가 꾸준한 열연·후판·냉연 제품 대비 철근은 올해도 극단적 감산 말고는 답이 없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철근 인기가 식고 중국산 저가 제품까지 범람하며 2023년 1분기만 해도 톤당 97만 원이 넘던 철근 가격은 지난해 1분기에는 77만 5000원까지 하락한 데 이어 최근에는 60만 원대 후반까지 급락했다. 철근 제조사들 입장에서는 제품이 팔리지도 않으면서 가격마저 떨어진 이중고를 겪는 것이다.
앞서 지난해 철근사들은 공급을 줄여 가격을 정상화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감산을 시작한 바 있다. 현대제철은 통상 2~3주 소요되는 특별 보수 기간을 지속 연장하는 방식으로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동국제강은 7월부터 철근 공장을 야간에만 가동하고 있다. 대한제강·환영철강·한국제강 등 국내 철근 제강사 가운데 대부분이 하반기에 대보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공장 가동을 일부 멈추기도 했다. 이런 결과로 지난해 철근 생산량은 724만 6000톤으로 전년(876만 9000톤)보다 17% 감소했다. 다만 감산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더욱 줄며 재고는 계속해서 쌓이고 가격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철근 재고는 59만 1000톤으로 올여름부터 다시 증가하는 모습을 보이며 평년 대비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단순 감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철근사들은 궁극적 목표인 ‘가격 정상화’를 위해 올해는 공급량을 더욱 줄이는 전략을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추가 감산을 통해 수급 균형을 맞추고 이후 가격 협상에 나선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전기료 인상과 고환율로 인한 원가 부담이 커지며 업계는 생존을 위해 이 같은 조치가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철근사들은 우선 일정 금액 밑으로는 판매하지 않는 ‘최저 마감제’를 시행하며 가격 인상을 위한 초석을 마련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유통 물량 가격을 톤당 70만 원을 하한선으로 설정하고 다음 달부터 매달 5만 원씩 인상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해당 가격에 대해 후정산·인센티브·할인 등 어떠한 종류의 예외도 적용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또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책정되는 유통사로 향하는 철근 판매를 아예 중단하기도 했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겨울철 유통사들이 철근을 저가에 대량 매입해 성수기에 고가로 되팔 경우 제강사들의 수익성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한 선택이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철근의 유통 가격이 약 70만 원 정도인 원가 이하로 내려온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며 “떨이로 판매해 적자를 감수하기보다는 우선 생산을 줄이는 수축 전략으로 협상력을 확보하는 것이 제강사들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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