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화두 중 하나는 5%에 육박하고 있는 미국 장기 국채 금리 부담과 미국 증시 버블 여부다. 지난달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12개월 예상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22.8배다. 닷컴 버블 국면이었던 2000년 초(24.3배)와 지수가 급락하기 시작했던 2022년(23.1배)을 제외하면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치다. 그만큼 현재 미국 주식이 상당히 비싸다는 것이다. 고평가 부담에도 미국 증시는 최근까지 미국 경기와 기업 실적이 양호한 덕에 고금리 부담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 이후 공개될 관세, 감세 등 정책들은 그동안 잠잠하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다시 자극해 증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미국 증시가 비싼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팬데믹을 전후로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 잡고 있는 자국우선주의 국면에서 어느 나라들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교역 비중은 19%다. 유럽은 75%, 한국은 74%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무역 환경 불확실에 따른 위험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는 의미다.
에너지 의존도가 낮다는 점 역시 강점으로 작용한다. 유럽의 경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기업들의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반면 2022년 기준 미국 산업용 전기요금은 1킬로와트시(kWh)당 8.4센트다. 유럽 경제대국 중 하나인 독일(20센트)과 비교했을 때 한참 저렴한 금액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4.5센트를 밑도는 수치기도 하다. 똑같은 입장이라면 미국 기업의 이익 창출 능력이 더 뛰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더구나 벤처캐피털(VC) 시장 생태계도 잘 갖추어져 있다. 미국 VC 시장 규모는 1530억 달러(약 226조 원)로 2위인 중국(547억 달러)에 비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국가 생산성 향상을 주도할 수 있는 새로운 강자들이 출현하기 유리한 환경이다.
그러나 한 방향으로 쏠리는 투자는 언제나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미국과 나머지 시장들 간 밸류에이션(내재가치 대비 주식 가격) 괴리가 사상 최대로 벌어져 있다. 유로스톡스 50지수 PER은 미국 대비 60%에 불과하며 코스피 지수의 PER은 미국의 40%에 그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올해 어느 시점에서 이러한 괴리는 멈출 가능성이 있다.
최근 국내 증시가 생각보다 선전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기관을 비롯한 투자자들은 연초 자산 비중을 재조정한다. 투자자들이 자산 비중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한국 주식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4분기 실적 쇼크를 기록한 삼성전자(005930)가 최근 반등한 이유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국내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비중이 가장 크게 감소한 업종이 반도체, 배터리 업종이다. 물론 올해 어느 시점에서 이들 기업 실적은 바닥을 지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경기에 민감한 산업들이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 최근 주가 흐름은 실적 바닥 기대보다 자산 배분 측면에서 나타나는 리밸런싱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미국과 미국 이외 지역의 배분을 지난해 7:3이었다면, 올해는 6:4 정도 수준에서 유지하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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