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한국의 낸드플래시 해외 수출액이 10% 넘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서버용 낸드플래시 판매량은 견조한 성장을 이어갔지만 전자기기·스마트폰 등 주요 매출원에서 수요가 정체되면서 성장이 둔화했다. 올해 낸드 시장에서도 비슷한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되자 세계 1·2위 낸드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공급량 조절을 검토하고 있다.
15일 관세청의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우리나라의 낸드 수출액은 15억 3236만 달러(약 2조 2380억 원)로 집계됐다. 2023년 4분기(17억 6384만 달러)보다 13.1%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 모든 분기를 통틀어도 4분기 수출액은 낮은 편이다. 1분기 수출액은 25억 6300만 달러였는데 전년 동기보다 71%나 증가하면서 본격적인 성장이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그러나 2분기부터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3·4분기 내내 정체된 수출액을 기록했다.
낸드플래시는 전자기기에서 각종 데이터를 반영구적으로 저장하는 메모리반도체다. 정보 저장 공간을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3D 낸드가 시장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
낸드는 세계 메모리 1·2위 회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반도체 제품이기도 하다. 낸드 해외 수출액은 두 회사의 낸드 사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다.
낸드 해외 수출액이 부진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꼽힌다. 첫 번째는 주요 매출원의 성장세가 꺾이고 있어서다. 낸드 업체들은 지난해 AI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하면서 서버용 낸드 분야에서 재미를 봤다. 데이터 양이 폭증하는 AI 시장에서는 기존 저장장치인 하드디스크에서 낸드플래시가 탑재된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로의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 실적발표회에서 “기업용 SSD(eSSD)의 매출이 회사 전체 낸드 매출액의 60%를 차지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업용 SSD를 제외한 스마트폰·PC용 낸드 시장에서는 성장세가 더디다. 물가·금리 상승으로 전방 수요가 꺾이면서 낸드플래시 수요와 가격도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USB·메모리카드 용으로 쓰이는 128기가비트(Gb) 범용 낸드플래시의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1월 4.72달러였지만 12월에는 2.08달러까지 뚝 떨어졌다.
AI 기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호기심이 덜한 것도 IT 기기용 낸드 판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소비자들이 기존 IT 기기로도 AI를 충분하게 경험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AI 기능을 사용하기 위한 구독료는 기꺼이 지불하지만 새로운 스마트폰 구매에 필요한 할부금은 망설이는 소비자가 많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는 낸드 시장의 치열한 경쟁 체제 때문이다. 낸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35.2%, 20.6% 점유율로 1·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D램 시장에서 형성된 굳건한 3강 체제만큼 안심할 수는 없다. 일본 키옥시아, 미국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 중국 양쯔메모리(YMTC) 등 전통의 낸드 강자의 기술 추격과 신흥 중국 업체들의 진입이 뒤섞이면서 치열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부정적인 낸드 시황은 적어도 올해 1분기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량 감축을 고민해야 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이미 낸드 4위 회사인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낸드 웨이퍼 투입량을 10% 중반대로 줄이고 있다”며 감산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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