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취업자 수가 3년 10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가뜩이나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내수가 비상계엄 사태 영향에 더욱 악화됐기 때문이다. 통계청 관계자도 15일 “연말 정치 혼란 등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내수 관련 업종들의 고용도 부진했다”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용근로자다. 지난해 12월 일용근로자는 1년 전보다 15만 명 줄어 21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일용직 근로자의 경우 지난해 전체로는 12년 만에 최대 폭 감소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임시직과 일용직 감소가 12월 취업자 감소분(5만 8000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는 도소매업이나 건설업처럼 내수 경기와 관련이 깊은 업종에서 취업자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도소매업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9만 6000명 감소해 10개월 연속 내림세를 이어갔다. 건설업의 경우 15만 7000명이나 줄어 2013년 산업 분류 기준 시계열 정비를 한 이후로 감소 폭이 가장 컸다. 제조업 일자리(-9만 7000명)도 6개월 연속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비상계엄 및 탄핵 정국→소비심리 악화→고용 둔화’의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계청 나우캐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1~27일 주간 신용카드 이용 금액(신한카드 기준)은 한 달 전보다 9.9% 감소했다. 같은 달 한국은행 소비자심리지수는 88.4로 전월보다 12.3포인트 급락했다. 이 같은 흐름은 온라인 채용 건수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과 잡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넷째 주(22~28일) 온라인 채용 모집 인원수는 1년 전보다 46.6%나 줄어들었다.
내수·고용 부진은 올해 내내 지속되고 있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수입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는 26만 3288대로 1년 전(27만 1034대)보다 2.9% 줄어 재작년(-4.4%)에 이어 2년 연속 판매량이 위축됐다. 수입차 등록 수가 2년 연속 뒷걸음질 친 것은 국제통화기금(IMF)발 외환위기 당시인 1997~1998년 이후 26년 만이다.
이처럼 내수가 악화하다 보니 지난해 연간 취업자 증가 수는 2023년(32만 7000명)의 절반 수준인 15만 9000명까지 떨어졌다. 2020년(-21만 8000명)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별다른 이유 없이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쉬었음’ 인구는 전년보다 11만 7000명 증가한 246만 7000명을 기록해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문제는 당분간 내수가 지속적으로 나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2일 기재부는 올해 취업자 증가 폭을 올해(15만 9000명)보다 낮은 12만 명으로 예상하며 “생산가능인구 감소 폭 확대와 경기 흐름 약화로 취업자 수 증가 폭은 2024년보다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예상대로라면 올해 취업자 수는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21만 8000명) 이후 최소 폭 증가한다. 경제 심리가 빠르게 회복되지 않을 경우 이보다 낮아질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확장 재정과 기업 투자 활성화로 고용을 늘리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동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에서 추경을 빠르게 추진해 조기에 건설 부문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며 “지금처럼 어려운 때일수록 기업들의 투자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과감하게 제도 개선과 규제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영업자 폐업 지원과 중년층의 전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내수 부양을 위한 적절한 시점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통시장 신용카드 사용액 소득공제율이 현행 40%에서 50%로 상향됐다면 이번 연말정산에서 913억 원의 소득공제 혜택이 돌아갔을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정부는 1월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전통시장 공제율을 현행 40%에서 80%로 상향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국회에서 여야가 논의한 끝에 전통시장 공제율을 50%로 올리기로 합의했으나 야당 주도로 세법이 처리되면서 이 같은 여야 합의안은 반영되지 못했다.
추가경정예산도 여야의 힘겨루기에 편성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추경은 최대한 빨리할수록 좋은데 정치 위기가 지속하면서 언제 편성할지 가늠이 힘든 상황”이라며 “이대로라면 피해를 보는 것은 서민과 저소득층으로 추경을 통해 내수와 고용을 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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