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해외주식을 매매하는 개인투자자)들이 이달 들어 미 단기채권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미 증시의 변동성이 커진 가운데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리 인하 횟수 조절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연초 기술주가 동반 하락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단기채권의 금리 매력이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면서도 원·달러 환율 하락 시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16일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서학개미들은 올 들어 14일까지 ‘뱅가드 단기 회사채 상장지수펀드(ETF)’를 8553만 달러(1249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테슬라 및 테슬라 2배 ETF에 이어 순매수 3위에 해당된다. 이 상품은 만기가 1~5년인 우량 회사채에 투자하는 ETF로 4% 가까운 연간 배당수익률을 기록 중인 월배당 ETF다. 지난해 12월만 해도 순매수 상위 50위에도 들지 못했지만 이달 들어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3개월 미만 미 국채에 투자하는 ‘아이셰어즈 0~3개월 미 국채 ETF’ 역시 같은 기간 5369만 달러(784억 원)의 순매수액을 기록해 순매수 7위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단기 국채 및 회사채 ETF에 보름 사이 2100억 원 이상이 유입된 셈이다.
이는 미 대선 이후 성장기술주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던 지난해 12월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실제 지난해 12월에만 5000억 원 이상 강한 매수세를 보였던 브로드컴의 이달 순매수액(14일까지)은 970억 원으로 급감했고 지난해 12월 7000억 원 이상 순매수했던 팰런티어는 이달에는 순매수 상위 목록에서 종적을 감췄다.
단기채권에 대한 투자 수요가 증가한 것은 기술주 중심으로 미국 증시가 조정을 받고 있는 데다 금리 인하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나스닥지수는 1.83% 하락하고 있다.
국채금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도 단기채 ETF로 수요가 몰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10년물 미국 국채금리는 최근 5%를 육박해 1년 2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고 3년물 국채금리도 이달 14일 4.47%로 상승세다. 채권 금리 상승은 채권 가격 하락을 뜻한다.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 등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불거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하지만 단기채권은 운용 기간이 짧다. 단기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등 거시 변수에 따라 민감하게 금리가 움직이는 장기 채권에 비해 투자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하재석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후퇴하면서 단기채권 금리도 상승해 단기채 투자가 늘어난 것”이라며 “올해도 미국 경기의 견조한 확장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고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어 연준의 금리 인하가 지연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다만 “미국 상장 단기채권 ETF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하락(원화 강세)할 경우 환차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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