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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국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리더

홍병문 문화부장

프랑스 혁명 전쟁의 영웅 나폴레옹

시민 사회의 지지 힘입어 황제 등극

영국 처칠, 위트있는 연설·문장으로 사랑

현대사회 권력은 강압 아닌 설득력 바탕

공감 못 얻는 리더는 국민이 따르지 않아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그도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말인가. 이제 그는 인간의 권리를 짓밟고 자신의 야망을 채우려 할 것이다. 자신이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며 폭군이 될 것이다.”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자신을 프랑스 황제로 선포하자 작곡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격분했다. 베토벤은 그를 위해 작곡했던 교향곡 3번의 악보 첫 페이지를 움켜쥐고 제목으로 써뒀던 ‘보나파르트’라는 단어를 지워버렸다. 음악학자 루이스 록우드는 ‘베토벤 심포니’라는 책에서 그의 3번 교향곡을 두고 시대를 초월하는 영웅의 이상에 바치는 곡이라고 평가하며 작품에 얽힌 일화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지중해 코르시카섬 출신의 초급 장교였던 나폴레옹은 혁명 전쟁의 영웅으로 승승장구했다. 자유와 평등,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최고의 선으로 여겼던 베토벤은 군주제 왕정을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한 나폴레옹을 그 시대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믿었다. 그런 나폴레옹이 황제 자리에 오르자 베토벤이 실망과 분노를 느낀 것은 당연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던 3번 교향곡의 제목을 ‘보나파르트’에서 영웅이라는 의미의 ‘에로이카’로 바꿔버렸다.

‘영웅 교향곡’의 베토벤 자필 표지의 일부.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미래의 폭군으로 치부하고 평가절하했지만 프랑스인들은 달랐다.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서 프랑스 국민의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나폴레옹은 황제 자리에 오르는 것을 놓고 놀랍게도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투표에 참가한 350만 명의 프랑스인들은 99%가 넘는 찬성표를 던졌다. 숱한 전쟁에서 최대 300만 명의 희생자를 낸 나폴레옹이지만 황제 자리에 오를 때는 한 방울의 피도 흘리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35세의 나이에 프랑스 첫 황제로 등극할 수 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젊은 장교 시절부터 그는 솔직함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군인들의 전폭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았다. 그가 프랑스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데는 대중 설득력이 큰 바탕이 됐다. 자유와 평등을 시대정신으로 삼았던 프랑스 시민들은 자신을 억압한 부르봉 왕가를 프랑스에 다시 발 들이게 할 수 없다는 나폴레옹의 설득에 전적으로 공감했고 기꺼이 그를 황제로 받아들였다.

나폴레옹은 자신을 난세의 전쟁 영웅으로 미화하는 선전술에도 능했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에서는 마블스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보다 더 멋지게 그려진 나폴레옹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독일의 문호 괴테조차도 독서광이었던 나폴레옹의 지식과 교양에 감탄해 찬사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윈스턴 처칠


설득의 힘을 바탕으로 국민의 사랑을 누렸던 또 다른 전쟁 영웅으로는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꼽힌다. 많은 작가와 정치 평론가들은 그를 비유와 설득의 천재라고 말한다. 위기 상황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은 채 중심을 잡았고 무게 있는 연설과 문장으로 국민들을 설득했다. 노벨재단은 1953년 처칠을 노벨 평화상이 아닌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그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정치인으로 남은 이유가 탁월한 설득의 문장력에 있었다는 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1960년 ‘대통령의 권력’이라는 책을 쓴 미국 정치학자 리처드 뉴스타트는 대통령의 실질적 권력은 헌법과 법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설득력이라는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갈파했다. 그는 대통령이 최고 명령자가 아니라 최고 설득자가 돼야 진정한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노벨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도 ‘권력과 진보’라는 책에서 현대사회의 권력은 강압이 아니라 설득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대통령이라 해도 강제로 군인을 전쟁터로 보낼 만큼의 강압적 권력을 갖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설득력이 없다면 국민들이 그 명령을 따를 수도 없고 따르지도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절체절명 대한민국 정치에 지금 가장 필요한 덕목은 다름 아닌 설득력이다. 여야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양쪽 진영의 많은 정치인들이 제대로 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설득력에는 의견이 다른 상대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필수다.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한 설득력. 한국 정치의 장에 서 있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다.

홍병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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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문 기자 문화부 hb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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